단체가 무언가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을 때, 눈에 띄는 활약으로 가장 먼저 칭찬하게 되는 존재. 우리는 이들을 ‘수훈 갑’ 아니면 ‘1등 공신’이라 칭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의 성과는 한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드러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로써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존재. 우리는 그들을 ‘블루워커’라 부른다.

받쳐줌이 없다면, 화려함도 없다

운동경기에서 득점만큼 인정받는 기록이 ‘어시스트’다. 그 득점이 이루어지기 위한 수많은 움직임과 패싱, 그 끝에 득점을 일궈내는 결정적 마지막 패스로서 그 가치는 득점만큼이나 소중하다.

쉬운 예로 장미를 생각해보자. 십중팔구 꽃잎의 ‘빨강’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빨강마저도 거칠게 가시 돋친 녹색의 줄기 없이는 피어나지 못한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더라도, 그 영광의 이면에 없어서는 안 될 가치로서 존재하는 것이 ‘블루워커’라는 포지션이다.

‘블루’는 우울한 색이 아니다

대체로 느끼는 블루의 색감정은 사전적 의미에도 내포되어 있지만, 조용한 듯 평이한 고요함 또는 우울함이다. 이 느낌을 빗대어 생긴 블루워크란 말은 결국 눈에 띄지 않는 외향적인 성향을 표현한 것이다.

개성 강하고 어필하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는 특히나 전체적 공감대에서 자신이 블루워커의 이미지를 갖거나 혹은 그 위치에 자리한 걸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무한한 기회와 시간임을 깨닫길 권한다.

그룹의 포지션은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평가 역시 크게 반영되는 위치다. 그 자리를 원했거늘 주어지지 않았다는 건 자신이 타인에게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자신을 냉정히 돌아보고, 타인이 어떤 면에서 자신보다 장점을 가졌는지, 자신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위치의 책임에서 보다 자유로운 채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으며,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냉정의 공간. 그것이 ‘블루 스페이스’다.

영상편집기술 중에 ‘블루스크린’이 있다. 파란 배경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 뒷배경의 푸른색을 그 어떤 배경으로도 합성하여 피사체를 꾸밀 수 있다. 산이든 바다든 우주까지. 고로 블루라는 개념은 ‘우울’이 아닌 ‘무한’이다.

‘후광’의 가치를 알아보는 시야를 가지길

단체에서 생기는 가장 큰 욕구. 자신의 존엄성, 아이덴티티의 증명이다.

주도와 리드는 개인의 만족감을 얻지만, 헌신과 지원은 단체의 만족감을 얻는다. 그렇기에 헌신하고, 궂은일을 맡는 행위 자체를 더더욱 가치 있게 봐야함이다. 누가? 구성원인 우리 자체가 그걸 인정할고 볼 줄 알아야 함이다.

이 순간에도 묵묵히 헌신하고 있을 어느 블루워크를 보잘 것 없다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행하지 않기를 바라며...

젊은 그대는 ‘푸른 불꽃’이다. 붉게 타오르기 직전 그 아래서 푸르게 피어나 붉은 열화를 받쳐 때를 기다리는 가능성의 불꽃. 그대라는 불꽃을 피우기 위해 남모르게 그대를 위하고 걱정했을 사람들이 있다. 가족, 친구, 동료. 그리고 이젠 그대가 그 누군가를 위한 블루워커가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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