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합성 평가 실질화부터 감독기구 독립까지…금융시장 전방위 개혁 예고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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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금융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보험, 결제, 투자 전반에서 소비자 중심의 규제·감독·세제 개혁 구상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손보험부터 펫보험, 카드결제 시장의 판도 변화, 그리고 투자환경 재편까지, 새 정부 금융정책이 시장과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정부가 금융·자본시장에서 소비자 보호를 전면에 내세운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불완전판매를 막는 판매규율 강화에서부터 금융감독체계 재편, 세제 정상화까지 전방위적 변화가 예고되면서 업계 전반에 지형 변화를 예고한다. 정부는 소비자가 보다 두텁게 보호받는 투자환경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고난도 상품 불완전판매 방지…설명 의무·평가 절차 전면 강화

지난달 14일 금융위원회는 올해 2월에 발표한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불완전판매 예방 종합대책'의 후속 조치를 발표했다.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령' 개정안과 '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규정변경예고한 것이다. 예고기간은 지난달 15일부터 오는 25일까지이며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적합성·적정성 평가 절차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있다.

그동안 금융회사는 투자자 성향 분석시 거래목적, 재산상황, 투자경험, 상품이해도, 위험태도, 연령 등 6개 필수확인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했지만 일부는 특정 항목을 누락하거나 평가 점수를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실 운영해 왔다. 앞으로는 모든 항목을 반드시 반영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비자와 상품의 위험도 간 불일치를 줄이도록 했다.

상품설명서 구조도 바뀐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의 핵심설명서 최상단에 '부적합 소비자 유형'과 '손실 가능성·사례'를 우선 기재하도록 의무화해 투자자가 상품의 위험을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했다. 적합성 평가 과정에서 특정 답변을 유도하거나 대면 권유 후 비대면 계약을 권하는 행위, 금융회사가 소비자 대신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도 부당권유행위로 명시해 금지한다.

또한 투자자가 스스로 부적합·부적정 상품 가입을 원할 경우 작성하는 보고서 명칭을 '(부)적정성 판단 보고서'로 변경하고 판단 근거·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도록 양식을 개선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가 위험 인식을 보다 명확히 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소비자보호 총괄기관의 권한과 역할도 확대해 KPI 설계시 소비자 이익 중심의 사전 합의 절차를 의무화했다.

◇실제 투자 현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예상될까

지금까지 금융 현장에서 빈번했던 사례를 보면 변화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60대 은퇴자가 은행에 정기예금을 하러 갔다가 직원의 권유로 복잡한 파생상품에 가입했지만 몇 달 후 투자원금의 30%를 잃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당시 금융회사는 투자경험을 묻는 과정에서 "적금 정도는 해보셨죠?"라는 질문에 "네"라는 답변만 받고 투자경험이 있다고 기록했다. 상품 설명서에는 원금손실 가능성이 뒷부분 작은 글씨로만 기재됐고 직원은 "안전한 투자를 원하시죠? 이 상품이 딱 맞을 거예요"라며 유도 질문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이번 개정으로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금융회사는 6개 필수 항목을 모두 꼼꼼히 확인해야 하며 위의 사례처럼 투자 초보자이면서 은퇴 후 안정적 수입이 필요한 고객에게는 해당 상품이 '부적합' 판정을 받게 된다. 상품설명서 맨 앞부분에도 '투자 초보자', '은퇴 후 안정적 수입 필요한 분', '원금손실 감당 어려운 분' 등 부적합 소비자 유형이 명시되고 "최대 100% 원금손실 가능하며 실제 사례에서 1000만원 투자 후 300만원 손실"과 같은 구체적 위험 사례도 함께 제시된다.

금융회사 직원들의 권유 방식에도 제동이 걸린다. "안정적 투자를 원하시나요?"처럼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이나 대면 상담 후 "집에서 인터넷으로 편리하게 가입하세요"라며 비대면 계약을 권하는 행위는 부당권유행위로 금지된다. 만약 고객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해당 상품 가입을 원한다면 '부적정성 판단 보고서'에 위험한 상품을 선택하는 구체적 근거와 이유를 직접 서술해야 해 한 번 더 위험을 인식할 기회를 갖게 된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소비자보호 전담기구 독립 추진

6월 들어서는 금융감독체계 전면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금융위원회의 정책·감독 기능 혼재를 비판하며 기능 분리를 주장해 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출범 이후 관련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주요 시나리오 중 하나는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감독 기능은 신설되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넘기는 방안이다. 특히 금융감독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별도 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독립시키는 방안이 거론된다.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 등 일부 위원은 금감위를 최고 정책결정기구로 두고 산하에 금감원과 금소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FCA)처럼 자본시장 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하나의 기관이 맡는 모델도 대안으로 검토된다.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독립된 소비자보호 기구가 투자자 피해 예방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부처 간 업무 조정 과정에서 정책 혼선이나 감독 효율 저하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금융소비자 권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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