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일자와 효력 다를 바 없고, 묵시적 갱신 규정에선 오히려 불리

#서울에서 전세살이를 하고 있는 A씨는 계약이 끝나가도록 집주인한테 연락이 오지 않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사이 전셋값이 1억원이 올라 걱정이 많았는데, 계약기간 만료 한 달 전까지 서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감으로써 종전 조건 그대로 자동연장을 이룬 덕분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년 전 불안한 마음에 전세권을 설정해둔 게 문제가 됐다. 확정일자와 달리 전세권은 묵시적 갱신이 불가능했고, 뒤늦게 계약이 끝난 사실을 안 집주인의 계약해지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처음 전세계약을 체결할 당시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크지 않아 혹시 나중에 보증금을 되돌려 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직접 경매 신청을 할 수 있는 전세권 설정등기를 해뒀다”며 “안전장치라 생각했는데 발목이 잡힐 줄은 몰랐다”고 아쉬워했다.

2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세난 여파로 매매가와 전세가 격차가 줄어들면서 안전장치로 전세권 설정등기를 고려하는 임차인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전세권 설정등기와 확정일자가 큰 차이가 없고, 오히려 세입자에게 불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전세권 설정등기나 확정일자나 세입자의 대항력 확보를 목적으로 한다. 다만 확정일자는 전입신고와 함께 주택을 인도받아 실거주까지 해야 효력이 인정되는 반면, 전세권 설정등기는 전입신고와 실거주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전세기간 만료 후 임대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을 때 확정일자는 임차보증금반환청구 소송 후 승소판결을 받아야 강제집행 신청이 가능하지만 전세권은 판결 없이도 직접 경매 신청이 가능하다.

또 확정일자만 받았을 때는 경매절차에서 따로 배당요구를 해야 하는데 반해, 전세권 설정등기는 별도의 배당요구 없이도 순위에 따라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직접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과 별도의 배당요구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많은 세입자들이 전세권을 확정일자보다 안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거주·전입신고·확정일자 요건을 갖췄다면 후순위 권리자보다 우선 배당이 가능하다. 전세권의 목적이 우선변제권임을 감안할 때 그 효력에 차이가 없는 셈으로, 전입신고나 실거주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비용과 수고를 들여 전세권을 설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설정과 말소에 따른 등기비용과 수고는 차치하더라도, 묵시적 갱신에 있어 전세권이 확정일자보다 불리하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현행 법에서는 임대차 계약 만기일 6개월 전부터 1개월 사이에 서로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계약기간이 자동 연장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이를 묵시적 갱신이라 한다.

이때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라면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종전과 같은 조건으로 2년을 더 살 수 있다. 하지만 전세권은 얘기가 다르다.

묵시적 갱신이 됐을 때 전전세권과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전세권을 설정한 것으로 보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문제는 민법 제312조 4항의 ‘이 경우(전세권의 묵시적 갱신이 이뤄진 경우) 전세권의 존속기간은 그 정함이 없는 것으로 본다’는 규정에 있다.

‘전세권의 존속기간을 약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상대방에 대하여 전세권의 소멸을 통고할 수 있고 상대방이 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면 전세권은 소멸한다’는 313조와 맞물려, 임대인이 계약해지를 통보하면 6개월 이내 집을 빼야 한다.

강은 지지옥션 팀장은 “배당을 받을 때는 앞에 선순위 설정이 돼 있는 지, 선순위 권리금액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며 “확정일자와 전세권 설정등기에 따라 경매에서 받는 돈이 달라지는 게 아닌 만큼, 순위를 따져보고 전세계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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