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뜻에서 한 일인데 오히려 피해만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개인 간의 일이라면 작은 손해가 있더라도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훈훈하게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은 다르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부작용이 생기면 웃음으로 넘기기 힘든 피해일 가능성이 크고 실효성이 떨어지면 행정력 등을 불필요하게 낭비하는 것 외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부작용이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취지를 강조하면서 정책을 추진한다면 당국의 치적 또는 나중에 나올 비판을 피하기 위한 보험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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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결합상품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하게 하는 장내화가 이런 정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대규모 손실 사태로 투자자가 위험을 피하고자 쉽게 손을 털고 나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 장내화가 거론된다. 장내화는 한국거래소가 추진 중이다.

ELS와 DLS 같은 파생결합상품이 장내화되면 객관적이고 투명한 시장가격에 매매하고 현금화하는 시간도 짧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ELS 등을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야 할 길이 멀다.

거래가 되려면 어느 정도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표준화는 자유로운 상품설계를 바탕으로 한 다양성이란 파생결합상품의 장점을 훼손한다. 특히 최근에는 복잡한 구조로 만들어지고 있어 표준화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게 금융투자업계의 시각이다. 과거에도 장내화가 추진됐다가 실현되지 못한 이유다.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도 어려워 보인다. 손실 가능성이 낮으면 매매를 할 이유가 없다. 손실 가능성이 높으면 팔려는 사람만 넘치고 사려는 사람이 없을 게 뻔하다.

그런데도 거래소가 이런 방안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예상대로라면 거래소나 투자자, 시장 등은 얻을 게 없지만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는 실적을 하나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의 관측이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사실이라면 생각을 고쳐야 한다. 제 살길 찾자고 남을 괴롭히고 기만하는 것은 불량배들이나 하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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