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흔들리는 달러...스티븐 로치의 경고

코로나19 팬데믹은 미국 경제패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정치·경제 질서를 호령한 미국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낼 정도로 취약한 시스템을 노출하면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응 실패는 대공황급 충격과 맞물려 미국 경제패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남겼다. 2회(①빚잔치 끝났다 ②흔들리는 달러)에 걸쳐 미국 경제패권의 취약성을 들여다본다. <편집자주>

미국 패권의 상징인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계 정치·경제를 주도해온 미국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내면서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뽐내던 달러 패권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美저축률·경상적자 한계수준..."달러 특권 끝났다"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는 지난 9일 블룸버그에 쓴 글(A Crash in the Dollar Is Coming)에서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로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을 누리는 시대가 끝났다"고 진단했다.

'과도한 특권'이란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1974~81년)이 재무장관 시절이던 1960년대에 처음 쓴 표현이다.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에 기대어 사실상 공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 못마땅해 하며 한 말이다. 로치는 전 세계가 지난 60년간 같은 불평을 하면서도 어쩌지 못했지만,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미국의 생활수준이 이미 전에 없이 쪼그라들었고, 미국이 세계의 지존이라는 '미국 예외주의'는 심각한 의문에 휩싸였다고 지적했다. 또한 통화는 해당국의 경제 기반과 이 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식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마련인데, 이 균형에 일어난 변화로 달러의 붕괴가 임박했는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로치는 미국 경제의 문제로 낮은 저축률과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들었다. 미국의 순국민저축률(NNS)은 올해 1분기 1.4%로 2011년 말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960~2005년 평균치인 7%의 5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저축률이 낮은 탓에 미국은 투자와 성장을 해외 잉여저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달러 패권에 힘입어 외국인 자금을 끌어모으기는 쉬웠지만, 경상수지 적자를 쌓아올리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미국은 1982년 이후 줄곧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발 경기침체는 미국의 저축률과 경상수지 적자를 한계수준으로 몰아가고 있다. 저축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로 기울었다. 2008년 3분기부터 2010년 2분기까지 평균치가 -1.8%였다. 이번에는 -5~10%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로치는 예상했다. 그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 비율도 역대 최악을 기록한 2005년 말의 6.3%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경상수지 적자를 빚으로 메운 결과 재정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이어진 미국의 재정적자는 올해 GDP의 17.9%에 이를 전망이다. 전쟁 기간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 바닥에 떨어졌다. 로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나 파리기후변화협약,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세계보건기구(WHO) 등 세계화의 기둥에서 이탈한 것,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한 것, 1960년대 말 이후 최악의 시위사태를 촉발한 것 등이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급격히 약해졌음을 방증하는 사례로 들었다.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미국에서 도시들이 시위 사태로 불타고 코로나바이러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내며 맹위를 떨치고 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에서 문제를 키우며 전에 없이 고립되고 무시당하며 심지어 조롱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질실효환율 기준 달러지수 추이[자료=국제결제은행]
실질실효환율 기준 달러지수 추이[자료=국제결제은행]

◇"달러 대안 없다고?...달러값 35% 추락 불가피"

달러의 쇠퇴에 대한 얘기는 사실 새로운 게 아니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겨루는 세계 양강(G2)으로 부상하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면서 달러 패권으로 유지되던 질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달러는 수년째 추세적으로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실질실효환율(REER)을 기준으로 한 달러값은 올 들어 5월까지 약 6% 올랐고, 2011년 7월 저점에 비하면 32% 뛰었다. REER은 무역량을 반영해 산출한 명목실효환율에 물가변동을 반영해 구한다.

로치는 달러가 이처럼 강세를 유지하는 건 달러가 전형적인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굳어진 결과라고 풀이했다. 위기 때마다 수요가 몰린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위기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안정되면 달러 값이 2011년 7월 저점을 지나 35%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로치는 블룸버그 글에서 달러 값 추락 시점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았는데, 지난 1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는 내년이나 내후년, 또는 그 이후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달러의) 추락은 사실상 불가피하다"며 "투자자들이 이 위험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로치는 달러의 추락이 1970년대 말과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황 속에 물가가 치솟는 현상이다.

달러 낙관론자들은 달러 유동성이 독보적이고, 달러가 전후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해온 만큼 하루아침에 패권을 잃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른바 "대안이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TINA) 주장이다.

로치는 지난 15일 블룸버그에 쓴 또 다른 글(How the Coming Crash in the Dollar Will Unfold)에서 이 주장을 반박하며 달러 비관론을 뒷받침했다. 환율은 결국 상대적인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중국 위안화와 유로화처럼 달러의 달러의 REER을 산출할 때 절대적인 비중(40%)을 차지하는 통화의 가치가 오르면 달러는 약세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로치는 전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70%를 넘었지만, 최근 60%를 밑돌게 된 것도 TINA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미국 투자전문매체 시킹알파도 로치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러면서 달러에 대한 지속적인 신뢰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들었다. 연준이 코로나19발 경기침체에 제로(0)금리 회귀, 양적완화(자산매입) 재개, 통화스와프 네트워크 재구축 등으로 선제 대응하면서 투자자들을 안심시킨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책임한 행동 탓에 연준이 더 이상 모든 부담을 떠안을 수 없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이 깨달은 것이라고 시킹알파는 지적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