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연합뉴스.

최근 '초단타 매매'가 한국거래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초단타 매매를 이용한 불공정거래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세계적인 증권사 메릴린치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5월쯤 메릴린치 창구를 통해 이뤄지는 초단타 매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잇따랐고 거래소는 8월에 모니터링에 착수했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지 1년이 흐른 지난 5월 거래소 규율위원회는 메릴린치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재안을 통과시켰고 시장감시위원회가 지난 19일 제재를 확정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거래소는 제재를 한달 미루기로 했습니다. 메릴린치가 추가 소명 자료를 내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충분한 해명 기회 제공이란 명분 뒤에는 거래소가 제재를 내리기 쉽지 않다는 현실이 있습니다.

우선 상황부터 정리를 해보면 시타델 증권은 지난해 3월부터 11월 메릴린치를 통해 초단타 매매를 했습니다. 시타델은 이 과정에서 현재가보다 미세하게 높은 호가로 대량 매수 주문을 냈다가 다른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하면서 주가가 뛰면 취소하고 보유 주식을 파는 방식으로 상당한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거래소가 문제 삼는 것은 초단타 매매를 한 행위 자체가 아니라 허수 매매가 포함돼 주가에 영향을 미쳤는데 거래 창구인 메릴린치가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점입니다.

초단타 매매에 관한 규정이 없어 거래소는 행동의 주체인 시타델 증권을 제재할 권한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불공정거래혐의 측면에서 거래소 회원인 메릴린치에 대해서만 제재를 논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래소뿐 아니라 자본시장법을 비롯한 관련 법이나 제도 중에서 초단타 매매에 관련된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타델증권의 행위가 명백한 위법인지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문제의 출발인 시타델증권에 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은 거기서 파생된 메릴린치의 행위의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얘기가 됩니다.

뚜렷하고 명백한 기준이 없이는 방증에 머물 수밖에 없으니 거래소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히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고빈도매매와 관련한 첫 제재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건에는 적용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초단타 매매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관련 제도 마련돼야 합니다.

국내 주식시장을 초단타 매매의 무풍지대로 만들었던 거래세가 줄면서 초단타 매매를 하려는 수요가 많아질 것이란 게 자본시장 전문가들의 예측입니다. 초단타 매매는 1초에 수백~수천번의 주문을 내고 대량 매매를 한다는 점에서 거래세가 주요 변수가 됩니다.

초단타 매매는 부작용이 있지만 시장 유동성 확대와 가격 불균형 해소와 같은 순기능도 있다는 점에서 적절한 관리·감독이 필요합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에서는 이런 이유로 관련 규정을 만들어 시행 중입니다. 관련 규제는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관련 기관의 등록·허가가 필요하고 초단타 매매를 어떤 알고리즘과 시스템으로 하는지 보고할 의무가 있습니다. 

당국이 시장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투자방식은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메릴린치처럼 창구 역할을 하는 금융회사는 초단타 매매로 발생할 위험을 관리할 의무도 부여됩니다.

우리도 이런 방식의 제도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제한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에 시간이 필요하다면 누가 어떤 방식으로 초단타 매매를 하는지부터 파악하기 위한 조치라도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일정 자격 요건을 만족한 경우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미국은 우리의 금융투자협회에 해당하는 자율규제기구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등록제 면허증을 발급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금융투자협회나 거래소에 어떤 알고리즘과 시스템으로 초단타 매매를 할 것인지 보고하게 하고 그 내역을 보관하도록 한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관련 문제에 대한 판단을 훨씬 신속하게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초단타 매매에 관한 규제는 법 개정 없이 시행규칙이나 거래소 규정을 정비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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