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자 하나면 누구나 셰프가 될 수 있다? 

맞벌이 부부인 손민혁(38)씨는 최근 아내와 함께 요리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셰프의 레시피대로 식재료가 계량돼 오는 '쿠킹박스'만 있으면 요리 초보자인 손씨도 20분 안에 일류요리사 못지않은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손씨는 "순서대로 재료를 넣고 끓이거나 차리기만 하면 맛있는 한끼가 뚝딱 완성된다"며 "질된 재료만 구매가 가능해 조리시간은 물론 잔반도 줄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손씨처럼 맞벌이와 1인 가구를 겨냥한 밀키트 시장이 뜨고 있다. 적은 노력으로 양질의 식사를 직접 요리하려는 니즈가 커진 덕분이다. 

밀키트는 가정에서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도록 한끼 식사 분량의 손질된 식재료와 소스, 레시피로 구성된 박스를 말한다. 가정간편식(HMR)의 한 종류지만 이미 조리가 다 돼있어 데우기만 하면 되는 일반 HMR과 달리 소비자가 직접 요리하는 즐거움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재료부터 레시피까지… 집밥 '뚝딱'

식품업계에 따르면 집밥차림에 HMR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식품업체들이 너도나도 밀키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엔 CJ제일제당까지 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기업간 선점경쟁이 치열해 질 전망이다.

현재 밀키트시장의 시장 규모는 약 400억원대 규모. 업계는 아직 초기단계의 시장이지만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고 양질 식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밀키트 시장 규모가 2024년까지 7000억원 정도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밀키트는 자녀가 있는 30~40대 맞벌이 가정이나 요리를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20~30대 미혼남녀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식품업체 한 관계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로 가정 내 조리 횟수가 줄고 가구당 구성원이 줄어 남는 음식이나 재료를 버리게 되는 경우가 잦아드는 데에 밀키트 시장의 미래가 있다"며 "밀키트는 요리 초보자와 음식물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는 계량된 재료와 합리적인 가격을 무기로 앞으로 더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밀키트 시장…너도나도 진출

국내 밀키트 시장은 스타트업 위주로 형성되다 최근 2~3년 안에 경쟁적으로 업체들이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프레시지, 닥터키친 등 푸드 스타트업 기업이 시장 포문을 열었고 2016년 동원홈푸드가 셀프조리로 뛰어들었다.

이듬해 한국야쿠르트가 ‘잇츠온 밀키트’를 출시하며 경쟁에 가세했고 이어 GS리테일이 ‘심플리쿡’, 롯데마트가 ‘요리하다’로 밀키트시장에 진출했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도 지난해 고급 식재료로 구성한 밀키트 ‘셰프박스’와 ‘고메이494’를 각각 선보였다.

쿡킷/사진=CJ제일제당

여기에 최근 CJ제일제당이 ‘쿡킷’을 내놓으며 밀키트 전쟁에 가세했다. 새롭게 론칭한 ‘쿡킷’은 ‘전문 셰프의 요리키트’라는 콘셉트로 개발됐다. 신선한 식재료와 전문점 수준의 레시피를 집에서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도록 메뉴를 다변화했다. 현재까지 개발된 메뉴만 60여종에 달하고, 2년 내 200여종의 메뉴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쿡킷 브랜드를 CJ프레시웨이, CJ대한통운의 경쟁력과 인프라를 결합해 시너지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CJ프레시웨이는 ‘쿡킷’의 식재료 공급, CJ대한통운은 새벽배송을 전담한다.

CJ제일제당은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올해 매출 100억원을 달성하고 앞으로 3년 안에 1000억원 규모로 매출을 키운다는 방침이다. 오는 11월까지 100억원 이상을 투자해 밀키트센터를 건설하며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김경연 CJ제일제당 온라인사업담당 상무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독보적인 식품 R&D 역량과 노하우, HMR 사업 경쟁력, 셰프 레시피, 계열사 시너지 등을 총동원했다”며 “다양한 메뉴 운영과 최고의 맛 품질, 식문화 트렌드 기반 서비스 등을 앞세워 국내 밀키트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열 경쟁 승패는? 차별화가 관건

커지는 밀키트 시장에 우려 섞인 시각도 나온다. 대규모 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벌써부터 시장 포화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어느 업체가 가격과 제품 차별성을 확보하느냐가 과열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분명한 건 국내 푸드테크 시장이 단순 음식 배달이나 신선 식재료를 배송하는 것을 넘어 ‘패스트푸드 2.0’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맛있는 음식은 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택배로 오고 고급진 음식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15분이면 해먹을 수 있는 요리의 즐거움은 덤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리기구만 준비되어 있다면 배달되지 않는 건 셰프뿐”이라며 “경쟁이 치열해지면 보다 다양한 메뉴를 내놓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펼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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