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성장 저해 vs 지배구조 개선해야

(사진제공=연합뉴스)

주주총회 시즌이 막바지다. 관심을 모았던 경영진과 주주 간 표 대결은 사측의 승리로 돌아갔다.

지난 22일 현대차 그룹 주총에서 주주들은 회사 측 손을 들었다. 지나친 배당이 기업 성장을 저해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당기순이익의 각각 3.5배와 1.3배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총에서도 회사 측의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국민연금은 사외이사 재선임 등 모든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원안대로 가결됐다.

미국 헤지펀드 SC아시안오퍼튜니티도 강남제비스코와의 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헤지펀드 측은 주총에서 4000원의 결산배당을 제안했지만 550원의 결산배당금을 제시한 회사 측 안건이 통과됐다.

오는 29일 '강성부 펀드' KCGI와 한진칼의 대결 역시 싱겁게 끝날 전망이다. KCGI는 주총에 안건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회사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상법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22일(현지시간) "엘리엇, 다음 타깃으로 현대차 구조조정 겨냥하다"는 보도에서 주총 결과가 아닌 이후 시나리오에 주목했다.

FT는 "엘리엇은 현대의 변화를 밀어붙일 다음 기회로 올해 말 있을 현대차 구조조정안을 노리고 있다" 전했다. 51% 이상의 지지가 필요했던 이사회 안건과 달리 구조조정안은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엘리엇이 지분의 절반가량을 가진 해외 주주들을 설득한다면 현대차를 흔들 틈이 생긴다는 얘기다.

안건 통과와 별개로 주주행동주의 움직임 그 자체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대기업들은 내부지분율이 높기 때문에 소액 주주들이 의결하지 않는 한 행동주의 펀드들이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구조다"며 "배당 확대, 이사회 독립성 제고 등을 공론화하고 경영자들이 자발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하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재계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난립을 우려한다. 투자수익 추구가 목적이기 때문에 고배당 요구 등으로 장기 경영 효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가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 장치를 요구하는 이유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에 7배가 넘는 고배당을 요구한 엘리엇과 같은 사례는 기업의 장기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면서 "과거 현대차 등 대기업의 성장은 이익의 상당부분을 연구개발에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한편에서는 외국계 자본에 대한 지나친 경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성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본부장은 "외국계 자본이라고 부정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며 "핵심은 오너 중심의 경영체제에 있다. 그들이 파고드는 낙후된 지배구조 등 근원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선 노력도 보인다. SK와 오리온 등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내용의 정관 변경 안건을 주총에 올렸다. 농우바이오, 한미사이언스 등도 감사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상정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주주행동주의는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경영감시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움직임은 자본시장에서 중요한 기업 벨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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