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는 잘못된 곳에 투자를 했다가 4억 엔을 고스란히 날렸다. 고객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상사들은 투자 손실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막다른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무작정 열차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증발'이다."

일본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 르포형 도서 '인간 증발' 내용 일부다.

일본에서는 매년 10만명 가까운 사람들이 증발하고 있다. 그 중 8만5000명 정도는 스스로 사라진 사람들이다. 입시, 실직, 파산 등과 같은 각종 실패에서 오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길을 택한다. '증발자들'은 신분을 지운 채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도쿄의 산야 같은 슬럼에서 숨죽여 지낸다.

13일 통계청은 '2019년 1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자 수는 122만4000명으로, 1년 전보다 20만4000명 많아졌다. 실업자가 크게 늘면서 실업률은 1년 전보다 0.8%포인트 높은 4.5%까지 뛰었다. 같은 달 기준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있던 2010년(5.0%) 이후 가장 높다.

윤정원 기자

취업자 수의 경우 지난달 2623만2000명으로 작년 1월보다 1만9000명 증가했다. 금번 오름 폭은 지난해 8월(3000명)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적다. 정부의 올해 일자리 증가 폭 목표는 15만명에 이르지만 일장춘몽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업자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구직급여 총액 또한 잿빛 일자리 전망에 색을 덧칠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0일 발표한 '고용행정 통계로 본 2019년 1월 노동시장 동향'을 보면 지난달 구직급여 지급액은 6256억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작년 8월 지급액(6158억원)보다도 많다.

정부는 국정 운영의 최우선 순위를 일자리 여건 개선에 두고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연간 일자리 창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대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책정한 일자리 사업 예산만 해도 13조4000억원. 그러나 매년 늘어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규모에도 고용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는 일자리 문제에 접근할 때 장·단기 전략을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산업구조조정과 규제 개혁을 통해 상생하고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구조혁신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공공기관의 채용 인원을 늘리는 '세금 일자리' 대책으로 발등의 불만 끌 것인가.

일본의 사회문화적 현상 일부가 일정한 시차를 두고 한국 사회에도 여럿 나타났다는 점에서 인간 증발은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차라리 그간 투입됐던 예산으로 기업 하나를 차렸으면 일자리가 더 늘어나지는 않았을는지, 자조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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