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경제 올 들어 동반 성장둔화 조짐
30~31일 워싱턴DC 미중 무역협상 촉각

<사진=연합뉴스>

세계 경제의 동시 감속 조짐이 짙어지고 있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미 경고한 일이다. 지난해 10월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0.2%포인트 낮춘 게 대표적이다. 2016년 7월 이후 처음인 IMF의 성장률 전망치 하향조정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았다.

IMF는 지난 21일에 낸 새 보고서에서도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0.2%포인트 내렸다.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 등 주요국의 조급한 금리인상 탓에 세계 경제 성장세가 예상보다 더 둔화할 수 있다고 우려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수석 경제 기자인 존 힐센래스도 최근 세계 경제 흐름을 3개의 장(章)으로 정리하며, 올해 세계 경제의 동시 감속이라는 새 장이 열렸다고 진단했다. 

첫 번째 장은 2017년 주요국 경제가 동시에 가속페달을 밟고 글로벌 증시 역시 랠리를 펼친 때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친기업(감세·탈규제) 정책이 배경이 됐다.

두 번째 장은 지난해. 미국 경제는 재정부양책 등에 힘입어 치고 나갔지만, 무역갈등이 고조되는 사이 나머지 주요국 경제는 성장세가 둔화했다. 글로벌 증시도 극심한 변동성을 겪다가 고꾸라졌다. 역대 최장기 강세장을 뽐내던 미국 증시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세 번째 장이 열린 올해는 세계 경제가 다시 한 방향으로 움직일 태세다. 다만 방향은 이전과 정반대다. 성장속도가 모두 더뎌지는 쪽이다. 미국의 성장률은 지난해 3% 수준에서 올해는 2%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중국은 지난해 이미 28년 만에 최저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럽 주요국 경제 전망도 비관적이다. 영국은 3월 말 시한을 맞는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로, 이탈리아는 재정불안, 독일은 제조업 경기악화로 일제히 성장둔화 조짐이 뚜렷하다.

세계 무역량이 줄고 있는 것도 확연하다. 수출 비중이 큰 나라나 다국적기업에는 성장둔화, 실적악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전 세계 무역 증가율은 2017년 5.4%에서 지난해 3.8%로 떨어졌고, 올해는 3.6%로 더 내릴 전망이다. 내년엔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에스와 프라사드 선임 연구원은 "2018년에 감돌던 낙관론이 비관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를 주도하는 건 물론 미국과 중국"이라고 말했다.

힐센래스는 올 들어 감지된 움직임이 제3장의 초안에 불과하다며 이 드라마의 서로 다른 배우들이 내릴 중대 결정에 많은 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연들 가운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고 강조했다. 프라사드처럼 미국과 중국이 올해 세계 경제 향방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본 셈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가장 큰 변수라는 얘기다.

미·중 무역전쟁의 향방을 좌우할 담판이 오는 30~3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 중국 경제 담당 부총리의 고위급 무역협상이다. 이번 협상이 잘 되면 궁극적으로 무역전쟁이 끝날 수 있지만, 잘못되면 확전이 불가피하다. 미국과 중국이 합의한 90일간의 무역전쟁 휴전은 오는 3월 1일 끝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때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곧바로 대중 폭탄관세 공격을 재개하고, 공격 대상을 모든 중국산 제품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방침이다.

미국이 중국에 요구하는 건 간단하다.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공정한 경쟁질서를 해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은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특히 문제 삼고 있다. 트럼프는 당장 증시 부양과 내년 재선 도전을 위해, 시 주석은 성장둔화 우려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타협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타협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우선 트럼프는 중국에 너무 광범위한 경제 개혁·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 쪽 추산으로는 미국이 요구하는 조치가 142개나 된다. 장기집권 체제를 굳힌 시 주석으로는 용인하기 어려운 조치가 많다. 자칫 양보했다가는 중국을 기술대국으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기반도 흔들릴 수 있어서다.

중국은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았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은 중국이 이미 40년 전에 국가주도형 성장 모델의 한계를 깨달았음을 의미한다. 이후 많은 변화 속에 중국 경제가 급성장했지만, 미국이 문제 삼듯 잔재 역시 많이 남아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 트럼프의 압력이나 시 주석의 결단으로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협상이 폭탄관세를 포함한 기존 관세를 유지하는 '불편한 휴전'의 연장쯤에서 결론이 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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