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제4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설명한 후 브리핑장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법제화하라던 요구가 현실이 됩니다. 보건복지부는 14일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을 통해 "국가에서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하고 국민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법에 연금 급여 지급을 국가가 보장한다는 취지를 명확하게 나타내도록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의 지급 보장 법제화 요구는 국민연금 제도 개편을 앞두고 몇 개월간 이어졌습니다. 여론이란 이름을 빌린 정치권의 주장이었습니다. 물론 여론과 정치인의 주장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 됐든 정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강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뿐입니다. 국민연금 보장 법제화는 국가의 부채를 늘리는 것 외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법제화를 결정하는 데는 많은 고민과 고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되돌려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가진 국민이 있고 야당에 발목이 잡혀 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운데 지지율까지 떨어지고 있으니 버틸 힘이 없었다는 해석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들어 국민연금의 상황은 소위 '동네북'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습니다. 국민연금의 주식대여가 공매도의 온상이란 비난이 일었고 주식시장 상황이 좋지 못해 수익률이 떨어진다고 눈총을 받았습니다.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고 주식시장이 폭락한 뒤에는 국내 주식을 더 사라는 요구까지 있었습니다.

조금만 내막을 알면 얼토당토않은 얘기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여론이 거세게 일어난 데는 정치권의 책임이 큽니다. 본질을 제대로 설명하고 국민들을 이해시키기보다 복잡한 구조에서 오는 오해를 더 키워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만 열을 올렸으니 말입니다.

그 노력은 국민연금이 헛심만 쓰게 하는 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대여 중단입니다. 국민연금은 주식 대여가 공매도로 이어져 개인투자자의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을 의식해 지난 10월 하순 주식 대여를 중단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전문가들은 공매도가 줄어드는 데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국민연금이 수익을 낼 수단만 사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망은 정확히 맞았습니다. 국민연금 주식 대여 중단 이후 공매도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밖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국민연금에 대한 비난과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수장은 물론이고 실무자들까지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근거 자료를 만드느라 수없이 많은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대부분은 정치인 자신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전화 한 통, 5분이면 억지스럽다는 판단을 할 만한 것입니다.

국민연금 지급 보장 법제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법제화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알고 수많은 전문가로부터 의견을 들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정치인들의 말 한마디가 훨씬 효과적이고 수월합니다. 효율성을 넘어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인의 의무입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할 때 지갑을 꺼내 돈이 있는지 보여주거나 카드 한도가 식대를 낼 만큼 충분하다고 증명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식대를 내고 가겠다는 각서를 쓰지도 않습니다. 식당 주인도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든 일이 식사를 하고 식당을 운영하는 데 불필요하고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연히 식대를 낼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제화가 연금을 받는 사람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정부에게 부담만 준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의 부담은 국민의 부담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국민의 노후를 걱정한다면 국민연금이 더는 사족을 다느라 헛심을 쓰지 않게 해달라고. 정부와 국민의 신뢰가 식당 주인과 손님만큼이라도 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정부도 더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흔들리지 말고 확신을 갖고 단호하게 본분에만 집중해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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