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구실로 고급 호텔 숙박시키고 한우·과일 '선물 공세'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전방위적인 로비 행각이 경찰 수사를 통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1일 현대·롯데·대우건설 3곳과 이 회사 직원들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위반 혐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과거부터 재건축 현장에서 투표권을 확보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조합원들에게 경쟁적으로 금품을 살포해왔다는 의혹은 이번 수사를 통해 재확인됐다. 특히 건설사들의 로비 행태는 좀처럼 눈에 안 띄는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적발한 건설사 중 한 곳은 조합원의 관광 투어에 직원들을 동행시키고, 고급 호텔에서 좌담회를 한다는 구실로 조합원들이 숙박할 수 있게 했다.

고가의 태블릿PC를 조합원에게 선물하기 위해서 "제안서가 저장돼 있으니 확인해보라"며 건넨 다음 돌려받지 않기도 했다.

한우 갈비, 오리고기, 과일, 수건 등 선물을 조합원의 신발장에 몰래 두고 오거나 경비실에 맡기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한 건설사는 직원들의 단체 채팅방에서 '과일을 살 때 반드시 조합 대의원이 운영하는 가게를 이용하라'는 방침을 하달하기도 했다.

건설사들의 수주 경쟁이 심화한 탓에 두 건설사로부터 모두 돈을 받은 조합원도 있었다. 한 조합원 어머니는 "시공사로 투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한 쪽에서 2000만원, 다른 쪽에서 4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합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것은 형식상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대행업체였다. 외관상 건설사가 직접 로비활동을 벌인 것으로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홍보대행업체들이 건설사에 로비 내용을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

홍보대행사 직원들은 아예 건설사 명함을 들고 다니며 조합원들을 수시로 찾아다녔고, 어떤 시공사를 선호하는지 파악해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을 주로 공략했다.

이렇게 오간 돈은 조합원들의 자백으로 확인된 부분만 현대 1억1000만원, 롯데 2억원, 대우 2억3000만원이다. 이는 확인된 금액만 포함한 것으로, 향후 범죄 액수가 추가 파악될 여지도 있다.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시공사 선정 과정에 부정한 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지만, 이 건설사들이 따낸 시공권을 박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확인한 혐의는 반포·잠실 재건축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린 지난해 9∼10월 무렵 벌어졌는데, 금품을 건네서 계약을 따내면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취소하도록 규정한 도시정비법 개정안이 도입된 것은 그보다 늦은 올해 6월이다.

이 법안은 소급 적용되지 않아 이번에 적발된 건설사들이 유죄를 확정받더라도 이를 이유로 시공사 선정이 취소되지는 않는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