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트레이더들이 20일(현지시간)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캔자스주 농장에 살던 소녀 도로시가 강아지 토토와 함께 회오리 바람을 타고 신비한 나라 '오즈'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렸다.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도로시가 깨어난 곳은 더 이상 캔자스가 아니었다. 도로시는 토토에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요즘 많은 투자자들이 오즈에서 깨어난 도로시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부터 강세장을 구가한 주식시장에 지금처럼 강력한 투매 바람이 몰아친 적이 없어서다. 최근 시장 분위기는 도로시가 맞닥뜨린 오즈만큼이나 낯설고 공포스럽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압력과 세계 경제가 다시 꺾일 때가 됐다는 변곡점 논란 속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현금이 주식, 채권, 상품(원자재) 등 다른 주요 자산을 수익률로 압도하는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불확실성이 시장을 장악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 '새 체제'(new regime)가 들어선 셈이라고 입을 모은다.

당장 미국 증시의 랠리를 주도해온 기술주의 몰락이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알파벳(구글 모회사) 등 미국 대표 기술주, 이른바 '팡'(FAANG)이 이번주 일제히 약세장에 진입했다. 주가가 전 고점에 비해 20% 이상 추락했다는 말이다. 그 사이 이들 5개 종목에서는 1조 달러에 이르는 시가총액이 사라졌다.

팡과 같은 대형 우량주의 시총이 단기간에 이만큼 쪼그라든 건 시장의 변동성이 이례적으로 커졌음을 방증한다.

'저가매수'(BTD·buy the dip) 전략이 통하지 않게 된 것도 최근 눈에 띄는 변화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뉴욕증시에서는 2002년 이후 S&P500지수가 주간 기준으로 하락한 뒤에 투자하면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전면적인 약세장 때나 약세장 진입을 앞둔 시점에만 BTD 전략이 불통이었는데, 모건스탠리는 올 들어 처음 BTD 전략이 투자자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최신 보고서에서 "지난 몇 개월 새 무심한 관찰자들에게도 미국 증시가 전과 다르게 움직이는 게 명백해졌다"며 "2018년은 분명 경기침체의 해가 아니지만, 시장은 악재가 다가오고 있다고 크게 외치는 중"이라고 말했다.

비관적인 신호는 최근 부쩍 더 짙어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최신 투자자 설문조사에서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본 이들의 비중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8년 11월 이후 가장 높아졌다. 골드만삭스의 '약세장위험지표'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높은 수준에 있다.

피터 오펜하이머 골드만삭스 수석 글로벌 주식 투자전략가는 약세장보다 저수익 기조가 이어질 공산이 더 크지만, 요즘처럼 변동성이 높아진 건 보통 대반전의 전조가 된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가 투자자들에게 현금 보유 비중 확대를 권고한 이유다.

스콧 마이너드 구겐하임파트너 수석투자책임자(CIO)는 "시장 비상구를 향한 조깅을 시작했다"는 말로 비관론에 힘을 실었다. 아직 내달릴 정도로 경기침체 위험이 임박하진 않았지만, 침체가 오고 있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침체가 다가오고 있다"며 "지금 당장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로시는 잠에서 깬 뒤에야 자신이 악몽을 꿨다는 걸 깨닫는다. 오즈의 마법사와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긴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낙관론자들은 최근 고조된 변동성이 오히려 시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홍역에서 벗어나 지난 수년간 더도 덜도 할 것 없는 '골디락스' 환경에서 싹튼 무기력과 자만심을 떨쳐낼 기회일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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