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사진:연합뉴스

"한국 증시가 현 상황을 극복하려면 기관이 버팀목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축소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의 발언입니다. 권 회장은 지난달 31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최한 '추락하는 한국 증시 대진단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습니다.

권 회장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함께 토론회에 참석한 이수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실장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실장은 해외 주식 확대는 장기적은 운용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고 기금운용의 위험 분산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 실장의 얘기가 아니어도 금융투자업계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권 회장의 얘기가 이런 반박에 부딪힐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기금운용수익을 높이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외투자 비중 확대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고 국민연금이 당장의 시장 상황을 고려해 기금운용의 방향을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클 수 있어서입니다.

그런데도 권 회장이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은 국내 증시를 살려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최근 국내 주식시장은 역대급 기록들을 세우면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미-중 무역분쟁과 미 국채 금리 급등 등 미국발 악재가 직격탄이었습니다.

여러 악재를 고려해도 국내 증시가 받은 충격은 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입니다. 코스피가 급락세를 타기 시작했을 무렵 증권사들은 코스피가 2100선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이 틀렸다는 증명은 며칠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상 밖으로 지수가 빠르게 하락한 이유는 생각보다 꽁꽁 얼어붙은 투자심리입니다. 애널리스트들은 지금의 장세를 공포가 지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경기 둔화와 기업실적 하향 등이 시장 가격에 미칠 영향보다 훨씬 더 큰 두려움이 객관적인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얘기입니다.

당장 주식을 사라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자들이 차분히 상황을 점검하면서 대응하면 주식시장이 패닉에서 벗어나 더 빨리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중 무역분쟁과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국내 기업도 실적이 나빠지고 경기도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얘기지 역성장을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직장인으로 치면 연봉 상승률이 낮아진다는 것이지 연봉이 줄어든다는 게 아니란 얘기입니다. 연봉 상승률이 줄어든다고 집안이 망하지 않습니다. 경제도 주식시장도 같습니다. 주식시장은 중·단기로 보면 상승도 있고 하락도 있지만 장기로 보면 언제나 우상향입니다.
권 회장도 이와 같은 맥락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권 회장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습니다.

국민연금 운용의 초점을 변동성이 큰 주식시장에 맞추란 얘기는 자칫하면 국민의 노후보다 증시와 업계의 이익만 생각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이 흔들리는 데 국민연금이 왜 아무것도 안 하느냐는 왜곡된 의식을 확산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발언한 자리에서 반박을 당하면서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했는데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권 회장이 다음 기회에는 주식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촉매제가 될 수 있고 금융투자산업과 업계, 투자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잘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를 내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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