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상장폐지되는 기업의 주주들이 부당함을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바탕 뜨겁게 달아올랐던 '무더기 상장폐지' 논란의 무대가 국회 국정감사장으로 옮겨가게 됐습니다. 국회가 한국거래소 코스닥 시장 책임자인 정운수 코스닥시장본부장을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거래소는 2017년 감사보고서에서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한 11개사에 대한 상장폐지를 결정했고 정리매매가 진행 중입니다.

정리매매가 시작되기 전 이틀간 상장폐지 대상 기업의 임직원과 투자자들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국거래소 사옥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일부 투자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고 상장사들은 법원에 상장폐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습니다.

거래소의 상장폐지 결정과 기업·투자자의 반발은 매번 반복되는 일이지만 대상이 많아서이지 이번에는 여느 때보다 강도가 높습니다. 이런 이유로 국회도 상장폐지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다루기로 한 것 같습니다.

주식시장 투자자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억울한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박수를 보낼 일입니다.

하지만 국정감사에서 이번 일을 다루는 것이 '희망 고문'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의 마음만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입니다.

국회가 정 본부장에게 어떤 질의와 요구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상장폐지를 취소하거나 이미 휴짓조각이 된 주식의 가치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장폐지 기업 임직원과 투자자의 주장처럼 상장폐지 제도에 불합리하거나 개선돼야 할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 제도 내에서 거래소가 상장폐지 결정을 내리면서 중대한 실책을 범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상장폐지 결정은 거래소 관계자 등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여지 없이 일정 요건에 따라 기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거래소가 상장폐지 전 충분한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주장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이번에 상장폐지되는 기업들은 2017년 회계연도 결산보고서 외부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받았습니다. 이후 5개월의 재감사 기회가 주어졌지만 외부 감사인으로부터 '적정'의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의견거절 사유는 '감사 범위 제한'이었습니다.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지 않아 결산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험 시간은 더 주어졌지만 답안지를 내놓지 않아 채점을 못 했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국회에서 거래소에 상장폐지 책임론을 꺼내는 것도 적절치 않습니다. 최소한의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기업을 퇴출해 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것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상장폐지 결정을 내렸다고 책임을 추궁당하는 것은 경찰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자를 잡았다고 문제 삼는 것과 같습니다. 상장폐지의 책임은 상장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에 묻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약 거래소에게 상장폐지 책임을 추궁하는 일이 벌어지고 반복된다면 기업은 상장사로써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고 피해를 보는 투자자는 더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상장폐지 문제를 국감으로 가져온 국회가 엉뚱한 곳을 때리는 헛수고를 하면서 투자자의 피해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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