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일데폰소 과하르도 멕시코 경제장관,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 승전보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밤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재협상을 타결지은 게 대표적이다. 1994년 발효한 나프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이라는 새로운 3자 무역체제가 출범하게 됐다. 

로이터는 이번 합의가 트럼프 대통령의 큰 승리라고 평가했다. 나프타 재협상의 가장 큰 화두는 자동차였는데, 멕시코에서 저가로 만든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유에서다. 원산지 규정을 강화하고 최저임금 규정을 신설한 탓이다.

로이터는 지난해 8월 나프타 재협상이 시작될 때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의 양보는 불가피한 것이었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나프타 폐기 위협에 두 나라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협상 막판에 트럼프는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폭탄관세 카드로 두 나라를 몰아붙였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3자 무역체제가 그나마 유지돼 공급망에 큰 탈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트럼프는 지난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안에 서명하고, 일본과는 양자 무역협상을 시작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이 역시 자신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그는 유럽연합(EU)도 무역협상 테이블로 몰아세웠다. 일련의 행보 뒤에는 역시 폭탄관세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도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폭탄관세 조치를 지렛대로 사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무역시스템을 다시 짜려는 트럼프의 작전에 속도가 붙고 있다며, 전 세계가 그의 반무역 공세를 막지 못해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다자무역체제를 깨뜨려 개별국가를 정복하는 전략(divide and conquer)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USMCA도 사실상 멕시코와 캐나다를 상대로 한 양자협상을 통해 도출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한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발을 뺀 것도 마찬가지다. TPP를 주도한 일본은 상대적으로 많은 양보가 불가피한 미국과의 양자협상을 꺼렸지만 결국 트럼프의 압력에 굴복했다. 

FT는 트럼프가 전 세계 무역상대국을 하나씩 골라 추가 관세 위협으로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미국의 주요 무역상대국 가운데 이에 맞서고 있는 건 중국이 유일하다고 꼬집었다. 미국과 중국은 몇 차례 협상이 실패한 뒤 폭탄관세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이 자유무역체제의 수호자로 나섰지만 미국을 상대하긴 여의치 않아 보인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워낙 커 대미 무역전쟁에서 잃을 게 더 많기 때문이다. 

EU와 일본도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옹호하지만,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에 힘을 실어줄 처지가 못 된다. 더욱이 미국이 문제삼고 있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해서는 EU와 일본도 불만을 갖고 있다. 물론 중국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면 드러내놓고 미국을 지지할 수도 없다. 

세계무역기구(WTO)를 개혁해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에 실질적인 제재를 가하자는 얘기도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WTO 체제 자체를 불신한다. 실효성 있는 개혁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는 중국을 WTO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다. 결국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의 무역공세를 멈추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FT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나라든 트럼프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처럼 미국과의 무역관계가 망가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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