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훈 전 사장이 지난 4월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참석, 자리에 앉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구성훈 사장 사퇴' 최근 몇 개월간 자본시장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알림입니다.

배당금 대신 잘못 들어온 주식을 삼성증권 직원들이 시장에 팔면서 발생한 유령주식 사태는 금융당국 제재와 그에 따른 구성훈 삼성증권 사장의 퇴장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내외부를 막론하고 최고경영자(CEO)가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나는 모습이 달콤하게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성훈 사장의 퇴장은 유독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삼성증권의 수장으로 구성훈 사장이 남긴 발자취가 유령주식 사태 수습밖에 없기 때문인 듯합니다.

유령주식 사태는 구성훈 사장이 삼성증권을 이끌기 시작한 지 17일만에 터졌습니다. 조직을 이끌어갈 밑그림을 제대로 그리기에도 부족할 시간입니다.

사태 발생 후 구성훈 사장은 피해를 본 투자자를 직접 만나 사과했고 자성 결의대회를 열어 본인을 포함한 임직원이 반성문을 썼습니다. 신속한 피해보상 결정과 임직원 자주 매입안 등도 발표했습니다. 금융당국 수장이나 자본시장 관계자를 만나는 공식 석상에서는 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금융감독원의 제재안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난달 하순경에는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신뢰회복이란 숙제를 흔들림 없이 완수해 역시 삼성증권이란 말을 다시 듣자고 독려했습니다.

그 뒤 한 달여만인 지난 27일 구성훈 사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전(前) 사장이 됐습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구 전 사장의 퇴장을 '용퇴'로 보고 있습니다. 사태를 수습하고 삼성증권의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는 있지만 직무 정지로 경영 공백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더 강했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금융당국은 구 전 사장에게 직무 정지 3개월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삼성증권도 과태료와 일부 업무 정지 등의 제재를 받았지만 구 전 사장이 오롯이 홀로 책임을 지는 듯한 모습이 씁쓸함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삼성그룹 계열 증권사라서 드는 기분 탓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그중에서도 삼성의 문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은 '관리의 삼성'입니다. 항상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면서 다른 기업에 비해 몇 발짝 앞서게 한 것은 관리의 힘이었습니다.

이런 힘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최소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그렇습니다.

"삼성증권이 업계를 선도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지만 1위란 평가를 못 받는 데는 시스템과 조직을 우선하는 조직 문화도 영향이 있습니다. 금융투자업은 다른 산업보다 개인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삼성에서는 기존의 틀 안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달리 삼성증권은 업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느냐는 물음에 대한 삼성증권 내부 인사의 얘기입니다. 그는 오류가 있더라도 조직과 시스템대로 움직였다면 이해되고 개인의 희생과 노력을 조직이 충분히 보상해줄 것이란 믿음이 있어서 이런 문화가 가능하다고도 설명했습니다.

구 전 사장이 조직과 시스템대로 움직였느냐는 다른 얘기니 차치하겠지만 삼성증권이란 조직을 위해 임기 내내 뛰어다녔고 마지막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구 전 사장에게 남은 것은 불명예 퇴장과 원하지 않은 장기간의 백수 생활뿐입니다. 현행법에는 금융당국으로부터 직무 정지 처분을 받으면 4년간 금융회사 취업이 금지됩니다.

금융회사가 아닌 곳에 둥지를 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5년간 삼성생명과 삼성자산운용, 삼성증권 등 금융권에만 있던 구 전 사장이 다른 일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삼성증권 수장으로 늘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고 강제로 얻게 된 '출근 없는 삶'이 아직 어색하기만 할 구 전 사장의 모습을 떠올리니 다시 한번 입맛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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