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보다 중한 '사회적 가치'는 없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사회적 가치'가 무너진 라오스 대형 댐의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가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8시(현지시간) 라오스 남동부 아타프주에서 수력발전용 댐인 세피안-세남노이댐의 보조댐이 무너졌다. 이 탓에 50억㎥의 물이 갑자기 방류돼 인근 6개 마을을 덮쳤다. 방류된 물의 양은 올림픽 경기용 수영장 200만 개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가옥 1370채가 피해를 입었고 663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무너진 댐은 SK건설이 시공했다. 

사고가 발생하자, SK건설 측은 사고 원인은 댐 붕괴가 아니라 이례적으로 퍼부었던 호우로 강이 범람하면서 불가항력적으로 보조 댐 상부가 유실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대규모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라오스 댐 붕괴 사고에 대해 SK건설이 시공 과정의 잘못이 있는지 상세히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 SK건설이 사업을 무리하게 서둘러 공사기간을 단축하면서 사고 원인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SK건설은 지난해 4월 보도자료를 통해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의 세남노이 댐 공사를 마치고 물을 채우는 임파운딩(Impounding)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공기 단축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SK건설은 세계 최고 지하 공간 공법·드론 신공법으로 공기를 단축했다고 하지만, 시공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일정을 앞당겨 건설하면 준공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SK건설은 이번 사고가 발생한 이후엔 공기를 단축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발주처로부터 공사 조기완료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20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고 오히려 홍보해왔다.

게다가 이번 SK건설의 라오스 댐 붕괴사고는 이제 첫 삽을 뜨는 문재인정부의 '신남방정책'에 급제동을 걸 사안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은 유상원조 시행기관인 한국수출입은행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에서 최초로 955억원을 지원한 민관협력사업(PPP)이다. 라오스 남부 볼라벤 고원을 관통하는 메콩강 지류를 막아 세피안·세남노이 등 2개 댐을 쌓고 낙차가 큰 지하수로와 발전소를 건설해 전력을 생산하는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사업이다. 

이런 사업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해 자국민의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는데, 시공사인 한국 SK건설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아세안(ASEAN) 국가 중에 자국의 개발사업을 한국에 맡길 나라가 있을까.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3년동안 타이타닉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 인간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영화 <타이타닉> 속 대사다. 타이타닉호와 함께 묻힌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해 나선 탐사선의 리더 브룩 로벳(빌 팩스톤 분)은 살아남은 승객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가 당시 침몰 상황에 대한 증언을 마치고 나자 그렇게 고백한다. 이번 라오스 댐 붕괴사고를 대처하는 SK그룹이 한번 곱씹어봐야 할 대사다.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틈만 나면 '사회적 가치'를 운운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회적 가치'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사회적 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SK그룹이 진정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이 사고가 인재(人災)냐 천재(天災)냐 따지기 전에 사람부터 구하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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