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 공청회'에서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최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두고 사회 각계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극적이고 최소한의 역할에만 머물렀던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관계자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자금의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위해 주주 활동 등 수탁자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도록 하는 행동지침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지난 17일 공청회를 열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안)을 발표했습니다.

발표된 안은 당초 예상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외이사 추천이나 의결권 위임장 대결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주주권 행사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위한 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에는 포함이 돼 있었지만 기업의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려 한다는 논란을 의식한 것입니다.

공청회에서는 사회 각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나와 토론을 했습니다. 재벌로 대표되는 경제계와 시민사회는 모두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전자는 경영 위축과 그에 따른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했고 후자는 경영권에 대한 견제 장치 없이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양쪽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적극적인 주주 활동에 나서면 기업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심한 경우 경영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대로 국민연금이 엄포를 놓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면 부적절한 행동을 일삼는 경영진이나 사주 일가가 주주의 권익을 위한 쪽으로 행동을 바로잡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쉽게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운 문제로 보이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양측의 얘기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옵니다. 반대하는 측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의 부정적인 영향이 그들의 주장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청회에서 경제계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온 한 패널은 "(도입안에) 기금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얘기는 없고 기업을 어떻게 다룰지만 얘기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측에 있는 다른 패널은 "국민연금이 가입자 보호만을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 자본시장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불성설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란 각론을 다루는 자리에서 총론인 기금운용의 전반을 아우르는 얘기가 없다고 지적했고 자본시장의 위축이 걱정되니 우리나라 국민의 40%가 넘는 2200만명의 국민연금 가입자를 위한 정책이 적절치 못하다는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이니 말입니다.

쉽게 풀면 가입자에게 무리 없이 연금을 줄 수 있도록 돈을 잘 굴리는 게 기금운용입니다. 주식은 주요 투자 대상이고 기업이란 말과 바꿔써도 무리가 없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을 다루는 얘기를 하는 게 당연한 이유입니다.

영국과 일본 자본시장이 스튜어드십 코드 탓에 위축됐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올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미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질주한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부모가 잘못을 지적할 때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없는 아이는 다른 얘기를 둘러대거나 엉뚱한 일로 떼를 씁니다. 마음으로는 잘못을 인정하지만 겉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아 나오는 행동입니다.

여기에 빗대어 보면 두 패널의 주장도 결국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으니 이해가 안 되는 얘기를 한 것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공청회 패널의 말 한두 마디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 사태만 봐도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강화해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조 회장 일가의 부적절한 행태로 주식시장에서 관련 주식의 가치는 곤두박질쳤지만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할 수 있는 일은 편지를 쓰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사이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 가치도 당연히 떨어졌고 수많은 소액주주도 손실을 봤습니다.

조 회장 일가에게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고 연일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서 수많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모두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대한항공이 심각한 경영 타격을 입는 것도 아니고 회장 일가를 경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견제 장치가 아무것도 없는 데 꼼작도 안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연금사회주의도 논란거리가 아닙니다. 정부가 기업을 통제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시끄럽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주 일가나 최고경영자(CEO)를 조용히 밀실로 불러서 얘기하거나 정보기관 등을 동원해 겁박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이런 방식이 흔적도 잘 남지 않고 발뺌을 하기도 좋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본질은 국민연금의 밀실주의를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권력자의 의지나 국민연금 내부에 있는 소수의 판단이 아니라 공개적이고 분명한 원칙을 바탕으로 국민의 노후자금을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게 핵심이란 얘기입니다.

그동안 국민연금에 쏟아진 비판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너무 소극적이다.' 그리고 '모든 일이 밀실에서 이뤄진다.'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쓸데없는 짓 말고 있으라고 핀잔을 주는 게 아니라 응원을 보내는 게 도리입니다.

아울러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면 어정쩡하게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국민연금이 불필요한 논란과 지적을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