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 / 사진제공: 연합뉴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이 보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면서입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 전 사장을 금감원장으로 추천한다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습니다. 각 청원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이 글들이 담고 있는 의미는 그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 전 사장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2016년 열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였습니다. 당시 주 전 사장은 한국 재벌이 조직폭력배와 같다는 등의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증인으로 나온 대기업 총수들이 하나 같이 모른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상황을 피하기 급급한 상황에서 주 전 사장의 발언은 '사이다'란 평을 받았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쓰지 말라는 압력을 받았다는 얘기까지 더해지면서 주 전 사장은 외압에 굴하지 않는 대쪽 같은 소신이 인물로 각인됐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추진될 때 유일하게 부정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냈습니다. 

주 전 사장은 한화투자증권을 이끌던 시절에도 금융투자업계의 이슈 메이커였습니다. 거침없는 발언과 파격적인 행보 때문입니다. 

한화투자증권으로 온다는 소식부터 관심을 끌었습니다. 지금의 한화투자증권은 2012년 9월 한화증권과 한화투자증권(구 푸르덴셜투자증권)이 합병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중복되는 인력 등이 많아지면서 비용이 늘어났고 실적에도 악영향을 줬습니다. 이런 상황에 등장한 게 주 전 사장입니다. 

주 전 사장은 우리투자증권 재직 시절 구조조정을 주도한 ‘칼잡이’로 알려졌던 인물입니다.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회사에 전문 칼잡이가 온다니 업계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주 전 사장은 본인에게 따라붙었단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칼을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은 주 전 사장이 나중에 보여준 행보에 비하면 큰 이벤트가 아니었습니다. 주 전 사장은 기존 금융투자업계의 관행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잘 아는 펀드만 팔겠다는 ▲코어펀드제도 ▲레버리지펀드 신규 판매 중단 ▲증권사 직원의 과당매매가 수익률을 떨어뜨린다는 보고서 발간 ▲고위험등급 주식 발표 ▲매도 보고서 발간 적극 권장 ▲온라인 전용 계좌와 전담 PB 상담을 받는 컨설팅 계좌를 나누고 고객이 선택하도록 하는 서비스 선택제 도입 추진 등 모두 파격이란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SNS를 통해 업계 현안에 대해서도 좀처럼 듣기 힘들었던 거침없는 쓴소리를 쏟아 냈습니다. 

주 전 사장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필요한 일이고 행보라는 쪽도 있었지만 문제가 있다거나 불쾌하게 생각하는 쪽이 더 많았습니다. 주 전 사장의 파격 행보에 깔린 고객 중심의 철학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존중하지만 그것을 실천하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독선적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주 전 사장의 행보는 대부분 ‘업계 전반에 잘못된 관행이었다. 우리는 고객 중심으로 가려고 이제 안 하겠다.’라는 식의 논리를 바탕으로 깜짝 발표하듯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나 빼고 다른 사람은 다 나쁘다’라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업계 전반에 있는 잘못된 관행이라면 모두가 함께 바꿔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금융투자협회나 사장단 모임을 통해서 충분히 의견도 나눌 수 있는데 그런 과정도 없이 혼자 악습을 털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는 게 보기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있었던 평이니 주 전 사장을 금감원장으로 추천하는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는 얘기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마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한 팟캐스트에서 주 전 사장이 자신은 공직에 들어갈 욕심이 없다는 의사를 내비친 적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이 금융 기득권의 저항에 밀려 자리를 내놓았다는 시각이 있는 상황에서 김 전 원장 못지않은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는 주 전 사장 카드가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라 꺼내기 어렵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 전 사장을 금감원장에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채용 비리 등으로 얼룩진 금융권의 문란한 규율을 바로잡고 금융업의 중심축을 금융회사에서 소비자로 바꿔야 한다는 염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주 전 사장이어야 한다기보다 그동안 쌓여 온 금융권의 문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풀어낼 강한 금감원장이 필요하다는 외침이라는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면서 빈틈없이 문제를 바로 잡을 것으로 기대했던 김 전 금감원장이 물러나게 되면서 이런 바람은 더욱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회사들은 항상 고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여기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금융회사가 갑, 자신은 을이라 생각합니다. 금융회사가 소비자 보호나 금융업의 질적 성장보다는 자신들의 편익에 더 초점을 맞춰왔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직접 경험했지만 사실상 참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 전 사장이 청문회에서 쏟아낸 재벌을 향한 쓴소리는 약자인 소비자가 강자인 금융회사와 그 경영진에게 하고 싶던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채용 비리에 얽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회사의 자원과 인력을 소모하고 과제가 산적한 금융감독당국의 역량을 낭비하게 만들고 있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등에게 보내고 싶은 메시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금감원장 자리가 공석으로 오래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대행 체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백이 길어지는 것을 우려해 바늘허리에 실을 묶는 식으로 서두르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새로운 금감원장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물러나는 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출신을 떠나 금융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단호한 원칙과 철학을 바탕으로 엄격한 규율을 세우면서 켜켜이 쌓인 금융권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금감원장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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