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규정 없다”..피해자 구제 미지수

“(은행원이 되려고) 기상 스터디부터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이들이 허다하다. 작년에도 고배를 마셨는데 채용비리 소식을 듣고 (스터디원) 모두 기운이 쫙 빠졌다. 취준 생활이 길어져서 집에 면목이 없었는데 핑곗거리가 생겨 다행인가 하며 어이없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올해로 3년째 은행원을 준비 중인 대학생 하 씨(29세)의 토로다.

연거푸 터지는 은행권 채용비리 뉴스에 취업준비생들 사이에 원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KB국민·KEB하나·BNK부산·DGB대구·JB광주은행 등은 채용 시 점수 조작을 통해 특정 학교 출신 또는 이른바 ‘빽’이 있는 지원자를 합격시켰다는 의혹을 받았다. 현재 검찰은 해당 은행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간 상태다.

5개 은행들은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고 나섰지만 사태를 바라보는 취준생들의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일례로 하나은행이 ‘SKY’ 출신을 합격시키기 위해 동국대·건국대·가톨릭대 등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를 불합격시켰다는 이야기가 불거지자 건국대 학보사 ‘건대신문’에는 ‘건국대라 죄송합니다’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실렸다. 건국대 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건송합니다”, “하나은행과 다시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등의 글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채용비리 과정에서 억울하게 탈락한 피해자들이 구제될지는 미지수다. 금번에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5개 은행을 비롯, 국내 주요 시중은행은 채용비리 발생 시 부정 합격자 처리 및 피해자 구제와 관련한 내부 인사규정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앞서 채용비리 의혹으로 이광구 전 행장 등이 기소된 우리은행은 ‘내부 인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부정 입사자들에 대한 인사 조치를 계획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검찰 수사 결과 사실관계가 밝혀지면 조치를 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법원 판결 이후 결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청탁 명부’를 통해 입사한 직원들은 재판이 진행되는 향후 1~2년간 문제 없이 은행에 다닐 수 있는 셈이다.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KB국민·KEB하나 등 다른 시중은행들은 특혜 채용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직원들에 대한 징계 등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향후 은행연합회에서 채용 관련 모범 규준을 만들더라도 합격 취소 등 소급 적용은 사실상 힘들 것으로 관측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누구까지 피해자로 인정할지,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지 등을 산정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면서 “공공기관과 달리 민간 은행에서 합격자 퇴출은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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