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기업 페이스북의 케빈 마틴 수석 부사장이 한국을 찾았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김용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시가총액이 한국 1년 GDP(국내총생산)의 3분의 1 이상에 달하는 공룡기업 부사장이 갑자기 등장한 이유는 '갑질 논란'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서다.

페이스북은 2016년 말 사용자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국내 인터넷망사업자(ISP) SK브로드밴드에 전용 캐시서버(네트워크 내 임시 데이터 저장소) 설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한 망 사용료 지급은 거절했다. SK브로드밴드가 반발하자 페이스북 접속을 아예 차단했다. "페이스북이 국내 통신사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마틴 부사장은 이날 김 차관으로부터 "페이스북이 우리나라의 우수한 통신 인프라를 이용해 돈을 버는 만큼, 국내 ISP에 적정한 망 사용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요구를 들었다.

페이스북과 ISP의 갈등은 ‘망 중립성’ 문제와 연결된다. 통신 인프라 제공 기업들과 이를 이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콘텐츠 사업자의 비용 분담 문제다. 망 중립성이 보장되던 시절 콘텐츠 사업자는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실시간 동영상 시대가 열리면서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했고, 통신 인프라 사업자의 부담은 커졌다. 통신사업자들이 더 큰 대가 지급을 요구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불거졌다. 망 중립성 폐지 논란도 가열됐다.

다음 달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은 망 중립성 논란이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는 물론 삼성전자 등 통신장비업체들은 평창올림픽을 5G 상용화를 위한 첫 시험대로 여긴다.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5세대(5G) 통신 시대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5G 통신이란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4세대 통신보다 최대 100배 이상 빠르면서도 수백 대의 기기가 안정적으로 동시 연결되는 이상적인 네트워크다. 5G 시대에는 통신장비, 반도체, 전자, 자동차,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길 전망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세계 5G 시장 규모는 2020년 378억달러에서 2025년 7914억달러로 6년간 2000% 성장이 예상된다.

그러나 기존 망 중립성 개념으로는 5G 시대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 문제는 5G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이다. 이는 하나의 네트워크를 잘게 쪼개 마치 여러 개 설치한 것 같은 효과를 내게 한다. 다만 슬라이스별로 특정 트래픽만 보내고, 전송 속도를 달리한다. ‘차별’을 금지하는 망 중립성과 배치되는 요소다. 5G 시대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지 않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하루빨리 망 중립성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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