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비리 파문으로 몸살을 앓던 우리은행이 이광구 전 행장의 후임으로 손태승 글로벌부문장을 내정하면서 한숨 돌렸다. 아쉬운 점은 연내로 예정됐던 완전 민영화가 무산되고 금융지주사 전환도 중장기 과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이던 우리은행 지분 29.7%를 매각한 데 이어 올해 말까지 남은 18.5%의 지분도 팔아 우리은행 완전 민영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현재 진행형인 만큼 이 계획은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완전 민영화 시점이 불투명해지면서 우리은행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금융지주사 전환 작업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내년 금융지주사 기업공개(IPO) 추진 여부에도 이목이 쏠렸지만 현 시점에서 이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모든 스케줄이 어그러지기 시작한 것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국정감사 기간 중 우리은행의 대규모 채용비리를 폭로하면서부터다.

심 의원에게 비리 관련 투서를 전한 게 우리은행 내 한일은행 출신 그룹이라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하면서 시작된 계파 갈등이 결국 현직 행장의 조기 사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6년간 상업 출신 행장을 모셨던 한일 출신들은 이번에 손태승 내정자를 신임 행장으로 앉히면서 반격에 성공했다. 채용비리를 주도한 상업 출신 인사담당 임원은 간신히 구속을 면했지만 이광구 전 행장 등 관련자들의 소환 조사 및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은 여전하다.

우리은행 내 상업 출신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당한 뒤 나락으로 떨어진 친박 정치세력과 비슷하게 '폐족'이 될 처지로 내몰렸다.

손태승 내정자는 상업과 한일 간의 계파 갈등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수뇌부 구성을 놓고 십수년간 '모 아니면 도' 식의 싸움을 벌여온 두 세력이 단시일 내에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다.

우리은행은 손태승 내정자가 공식 취임한 이후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임직원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계파 갈등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새롭게 주도권을 쥔 한일 출신들이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아야 한다.

최근 우리은행 내에서 들려오는 얘기들은 우려스럽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득세했던 한일·K대 라인이 복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정 대학 출신이 인사권을 둘러싼 요직을 독식하는 형국이다.

인사에 영향을 미칠 변수가 많아질수록 투명성은 의심받게 마련이다. 한일 대(對) 상업 구도에 학연 변수까지 더해지는 고차 함수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은행의 조직 안정은 요원한 일이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외풍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우리은행에 불어닥친 광풍은 누가 몰고온 것인가. 우리은행의 완전 민영화 무산은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하나. 다소의 시간이 흐른 뒤 특정 계파를 상대로 또다시 이같은 질문을 던져야 할 상황이 오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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