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6년 5개월 만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오는 30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는 여느 때와 무게감이 다르다.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25%포인트 오른 1.50%로 인상할 지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높다. 인상이 확정되면 2011년 6월 이후 처음이다.

한은의 선택은 늘 희비쌍곡선(喜悲雙曲線)을 그리게 마련이다. 모두를 만족시킬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탓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금리를 올려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3.2%로 상향 조정하는 등 경기 전망이 나쁘지 않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자칫 한·미간 금리 역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안보 위기 속에서도 증시가 황소 장세를 연출하는 등 자산에 거품이 낄 조짐이 감지되는 만큼 선제적인 금리 인상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다만 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면 가구당 대출금리도 따라 올라 이자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총 가계부채 1400조원 시대에 진입하고 가구당 부채가 7000만원을 넘긴 시점에서 금리 인상은 가혹한 처사일 수 있다. 한은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경우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이 2조3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소비 위축과 내수 침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선택은 금통위를 구성하는 '7인의 현자'의 몫이다. 금통위 의장은 한은 총재가 겸직한다. 의결권은 같지만 발언권은 더 세다는 게 통념이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이 나도록 몰아가는 분위기 메이커가 될 때도 있다.

이주열 현 총재의 임기가 3개월 안팎 남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첫 한은 총재 인선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향후 수 년간 한국 경제의 항로를 결정할 핵심 인사 중 한 명이다.

과거 정부 같으면 이 정도 시점에 후임자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짐작조차 어렵다. 이상한 일이다. 제이(J)노믹스의 각론이 수립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집권 공신에 대한 보은 인사 고민 때문인지, 지역·학력 안배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조윤제 서강대 교수가 최근 주미 대사로 임명되면서 아예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든 모습이다.

내·외부로 나눈다면 내부에서는 장병화 전 부총재가 적임자로 꼽힌다. '정통 한은맨'으로 지난 6월 퇴임 당시 이주열 총재가 직접 고별사를 낭독할 정도로 조직 내 신망이 높다. 대구·경북(TK) 지역 출신이라는 게 흠이지만 지역 안배를 고려하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외부 인사로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조사국장이 앞서 있다. 1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비(非)서구권 출신 중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은 첫 사례일 정도로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옥에 티다.

요사이 박봉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름이 입길에 자주 오른다. 행시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 기획예산처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한은 금통위원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1948년생으로 칠순을 앞둔 나이가 걸림돌이다. 해외 출장이 많은 한은 총재는 건강도 중요한 덕목이다. 재무관료라는 꼬리표 때문에 통화 정책 관련 '관치(官治)'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올드보이'로는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문 대통령)도 명함을 내밀 만하다. 문 대통령의 신임이 깊지만 박 전 실장보다 나이(1947년생)가 오히려 한 살 더 많다.

더 있다. 한국금융학회장을 맡은 바 있는 장하성 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자리를 옮길 가능성도 제기되고 '경제민주화' 진영에 속한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언급된다. 전 교수는 안철수 인사로 분류된다는 핸디캡이 있기는 하다. 이밖에도 김홍범 경상대 교수 등 군소 후보들이 난립 중이다.

언론이 주목했던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태국장은 MB 정부 시절 금융위 부위원장을 지냈던 이유로 배제되는 분위기다.

차기 한은 총재는 문재인 정부의 첫 총재라는 상징성과 함께 초저금리 시대를 벗어난 이후의 통화정책 수립, 미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 가능한 환율정책 수립 등의 무거운 책무를 감당해야 한다. 허투루 뽑을 인사가 아니다.

한은 총재 인선을 둘러싼 현재의 난맥상이 옥석을 가리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시적인 혼란이었으면 한다. 혹여 일각에서 우려하는대로 금융 홀대론의 연장선상이라면 엄혹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제이노믹스의 성공을 바라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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