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100세 인생 시대라는데, 노후에는 어떻게 살까’

중장년이 되면 누구나 ‘인생의 후반부’인 노후 삶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꽉 짜인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누릴 것이라는 설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이 마음을 더 짓누른다. 걱정만 할 뿐 제대로 준비하는 사람은 드물다. 은퇴는 새벽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삶, 시간은 흘러 각자 나름의 은퇴 생활을 꾸역꾸역 꾸려나가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은퇴 이후 이렇게 살아라’는 식의 많은 은퇴 지침서를 봐도 가슴 깊숙이 다가오지 않는다. 은퇴 이후 이상적인 삶은 몇 가지로 일반화하기 어려울 만큼 각양각색인 데다 내가 살고 싶은 삶과도 편차가 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삶이 아닌 노후 자산을 재설계할 때는 정형화된 모델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객관화된 기준이 존재한다. 그리고 노후 자산 재설계는 젊었을 때와 확실히 다른 게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노후 자산 재설계는 수익보다는 안전하게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격보다는 수성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은퇴 이후 투자에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원금에 손상이 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노동소득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원금이 훼손되면 복구가 힘들기 때문이다. 노후에는 손실을 두려워하고 원금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또 나이 들어서는 현금에 대한 인식도 달리해야 할 것 같다. 즉, 현금 보유 행위 그 자체를 투자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금을 쥐고 있으면 마치 남들이 다 하는 재테크를 게을리하고 스스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더 나은 투자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덜 생길 것이다. 섣부른 투자로 손해를 보기보다는 차라리 ‘현금이 왕’이라는 생각으로 돈을 쥐고 있는 게 낫다. 시장은 수시로 출렁이므로 이번이 아니더라도 다음 기회에 투자할 기회가 꼭 찾아오기 때문이다. 인생은 길고 투자할 기회도 많다.

나이가 들수록 조급증을 버리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원금을 지키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안분지족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라. 노년에 나락으로 추락한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지켜주는 최후의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 밑천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주로 원금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성급함 속에 무리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많이 배운 사람이든, 적게 배운 사람이든 실패하는 사람의 행동은 비슷하다. 하루라도 더 늙기 전에 원금을 더 불려놓아야 한다는 ‘빨리빨리’ 생각들이 일을 망친다.

자산 재설계에서 은퇴 공포에 짓눌러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은퇴 이후 삶에 대한 ‘겁주기 식’ 언론 보도에 우리가 너무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 노후를 준비해야 하지만 극단적인 ‘폐지 줍기’의 모습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면서 과도한 걱정을 하는 것은 문제다. 지금의 40~50대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소득 절벽의 완충장치를 갖춰 윗세대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이들 연금은 기대 수준에 한참 모자라고 개인별로도 편차가 크지만, 그래도 노후에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될 수 있다. 너무 겁먹지 마라. 어깨를 좀 펴고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나이 들어 굶어 죽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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