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물리학자 러셀 스태너드는 심장학자 허버트 벤슨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감행했다. 환자들의 회복을 위한 기도가 효험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벌인 실험이었다. 이들은 템플턴 재단으로부터 무려 240만 달러를 지원받았다. 주식투자에 성공해 돈을 번 존 템플턴이 세운 템플턴 재단은 인류의 종교활동에 공헌한 인물이나 집단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 특히 기독교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학자들에게 170만 달러의 상금과 템플턴 상도 수여한다.

실험은 심장동맥 우회술을 받은 환자 1802명을 세 집단으로 나눠 진행됐다. 첫 번째 집단은 회복을 위한 기도를 받았지만, 환자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도록 했다. 두 번째 집단은 기도를 받지 않았고 그 사실을 모르도록 했다. 세 번째 집단은 기도를 받았고 그 사실을 알도록 했다.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는 이들은 모두 병원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기도문도 표준화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기도를 받은 환자들과 받지 않은 환자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주목할 점은 자신이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안 환자들은 몰랐던 환자들보다 더 심한 합병증에 시달렸다는 사실이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이 우스꽝스런 실험은 신학자와 과학자들 양측으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았다.

기도를 믿거나 말거나, 신앙을 갖거나 말거나, 이는 모두 개인 판단의 문제다. 인간으로서 자유의지의 영역에 해당한다는 뜻이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는 이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나라들이 차고 넘친다. 또 종교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의 전쟁과 테러는 현재진행형이다. 거의 모든 세계적 분쟁과 갈등의 배경에는 종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종교가 가져다준 혜택이 폐해보다 더 크다’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이 통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인사청문회에서 지구의 나이는 6000년이며 “신앙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밝혔다. 놀랍다. 이 사람은 국내 유명 공과대학의 교수가 아니던가. 신앙인과 공학도 사이에서 나타났을 법한 지구 나이 계산법에 대한 갈등은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전 국민이 바라보는 공식 석상에서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소신과 용기가 가상해 보이기도 했다.

지구 나이가 6000년이라는 이 허무맹랑한 주장은 기독교계의 창조론에서 비롯됐다. TV복음 전도사들의 천국인 미국에서는 창조론을 믿는 그 나라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 수년 전 미국의 한 학교에서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가르치겠다고 해서 큰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허황된 세계관을 교실에 갖고 와서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겠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극단적인 이념을 공적인 영역에 가져다 놓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위해하다.

박 후보자는 이미 2007년 창조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오늘날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사실 그가 창조론을 믿든 말든 타인에게 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6000년이 아니라 60년이라 해도 상관없다. 사인(私人)일 때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나선 사람이다. 특히 장관은 정무직 공무원이다. 정무직이라 함은 국민들과 시대정신을,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자리다.

특히 그가 맡을 자리는 새 정부의 벤처산업을 이끌어 가는 자리다. 인공지능과 줄기세포과학을 논하는 이 시대에 말로만 듣던 창조론의 신봉자가 이런 중책을 맡는다니 해외토픽감이다. 그가 과연 과학계, 벤처업계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그가 사적인 신앙보다 공적인 업무를 더 중시할 것이라는 선의의 믿음을 억지로라도 가져야 하는 것일까.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역사관을 둘러싼 의혹도 여전하다. 뉴라이트 사관의 대부를 대학으로 초청해 강의를 들었다고 하는데 본인은 한 번 만났을 뿐이라고 한다. 아울러 그는 주식 무상증여와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 등 실정법도 위반했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 “일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그는 청문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여파나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문제와 같은 부처 현안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다”,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업계의 주요 관련법에 대한 이해도 역시 턱없이 부족함을 드러냈다.

청와대는 ‘대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자질이 부족한 사람에게 중책을 맡긴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안타깝지만 박 후보자의 지명은 철회해야 한다.

저작권자 © 비즈니스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