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1심 판결이 다가오면서 산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사측이 패소할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은 '소급지급 관련 신의칙 인정 여부'가 걸려 있어 판결 결과에 따라 산업계에 미칠 파장이 크다.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민법 제2조 1항에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권리의무의 양 당사자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할 때 신의와 성실로써 행동해야 한다는 민법상의 대원칙이다.
산업계는 통상임금 소급적용이 인정될 경우 8조3000억원 이상의 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인건비의 평균 36.3%에 달한다. 또 이로 인한 통상임금 인상률은 평균 64.9%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본급 인상, 일자리 창출 압박을 받는 산업계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종업원 450인 이상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35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부분 기업(29개사)이 '예측하지 못한 과도한 인건비 발생(82.8%)'을 우려했다. 또 '인력운용 불확실성 증대(8.6%)', '유사한 추가소송 발생(8.6%)'을 예상했다.
실제로 35개 기업 중 23개사가 기아차와 마찬가지인 소급적용 관련 소송을 겪고 있다. 나머지 10개 기업은 상여금 및 기타 수당의 고정성 충족 여부를 두고 소송 중이다.
현재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은 강원랜드, 기아자동차, 다스, 대동공업, 대유위니아, 대한항공, 두산모트롤BG,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만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삼성중공업, 아시아나항공, 우리은행, 유한킴벌리, 중소기업은행, 한국GM, 한국남동발전, 한국서부발전, 한전KPS, 한진중공업, 현대위아, 현대다이모스, 현대로템, 현대모비스, 현대미포조선, 현대비앤지스틸, 현대오일뱅크,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현대케피코, S&T중공업, SK에너지, STX조선해양 등이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 곳들도 소급적용 관련 노조의 압박을 받을 게 뻔하다"며 "이로 인해 증대될 과도한 인건비 부담은 결국 일자리 감소, 투자비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당장 기아차 소송만 해도 1심 판결을 앞두고 자동차 부품 업체들이 호소문을 발표하며 신중한 결정을 당부하고 나섰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은 "기아차가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기아차에 대한 대금 지급 의존도가 높은 중소부품협력사는 존폐 위기상황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며 "정부, 국회, 법원이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문제 등의 사안에 신중하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기아차가 소송에 패소할 경우 3조원 이상의 우발 채무 발생으로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며 "이 경우 3000여개 전·후방 업체가 연쇄 도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상여금을 임금제도로 운영 중인 중소업체 역시 소송분쟁에 휘말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기아차는 지난 3년간의 통상임금 및 수당 등 인건비 소급분과 지연이자 등 총 3조1000억여원을 부담해야 한다. 당초 오는 17일로 예정됐던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는 원고 목록 확인 등 추가 검토를 이유로 연기됐다.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달 중 선고기일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편 통상임금 문제가 산업계의 시한폭탄으로 자리한 것은 정부와 사법부 간 해석범위 불일치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또 고정성, 신의칙 세부지침 미비, 통상임금을 정의하는 법적 규정 미비 등도 노사 간 혼란을 가중한 원인으로 꼽힌다.
통상임금 갈등 해결도 결국 통상임금 정의 규정 입법, 고정성 및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 지침 마련, 소급분에 대한 신의칙 적용 등 법적규정이 명확히 마련되면 된다는 반응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법리 정리에도 불구하고 통상임금 정의 규정 및 신의칙 인정 관련 세부지침 미비로 인해 산업현장에서는 통상임금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통상임금 정의 규정을 입법화하고 신의칙 등에 대한 세부지침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의칙 인정여부는 관련 기업의 재무지표 뿐만 아니라 국내외 시장환경, 미래 투자애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