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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업계에는 매년 여름 무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것이 있다. 완성차 회사들의 최대 난제인 강성노조의 파업이다. 하투(夏鬪)로 불리는 이들의 파업은 여름을 넘어 가을까지 이어지면서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올해 자동차 업황이 최악의 상황에 놓이면서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차 등 완성차 5개사는 각 노조의 파업이 하반기 판매 마저 끌어내릴까 근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재 파업 수순을 밟고 있는 회사는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3사는 순이익이 급감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올 상반기 성적이 신통치 않아 벌써 연간 판매목표 달성은 물 건너 갔다는 말이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이미 지난해 임원 연봉 10% 삭감, 올해 과장급 이상 간부 직원 3만5000여명의 임금을 동결하는 등 비상경영체제 중이다. 한국지엠도 수출 급감, 신차 부재, 제임스 김 사장 사퇴 등 악재로 뒤덮여 있다.

그런데도 노조는 회사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며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13일부터 14일까지 양일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노조 측은 지난 3월 28일 첫 요구안 발송부터 20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지만 원하는 답을 듣지 못했다며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 15만4883원(호봉승급분 제외) 인상, 순이익 30%(우리사주포함)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 정년 최대 만65세 연장, 완전 주간연속 2교대 도입, 사회공헌기금 10억원 증액, 상여금 전년 대비 50% 인상한 800% 지급, 일부 조합원 손해배상·가압류·고소·고발 취하, 4차 산업혁명 고용보장 등이 포함됐다.

임단협과 관련한 찬반투표가 부결된 사례는 없다. 따라서 현대차는 올해도 파업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는 전면파업 1회를 포함해 총 24회의 파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추정되는 파업 손실은 14만2000여대, 3조10000억원에 달한다.

기아차도 지난달 29일 임금 인상 교섭 결렬을 선언한 상태다. 오는 17~18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다.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 문제로 회사와 각을 세우고 있는 상태여서 파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기아차 노조는 23회의 파업을 벌였다. 이로 인해 회사는 11만3000여대, 2조2000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최대 규모다.

김성락 지부장은 "상여금 통상임금 적용을 회사는 노동조합에게 독박쓰라는 태도로 교섭에 임하고 있다"며 "상여금 통상임금 해결이 안 되면 휴가 이후 투쟁으로 돌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지엠은 이미 지난 6~7일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79.49%의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한 상태다.

노조는 올해 월 기본급 15만4883원 인상, 통상임금(424만7221원)의 500% 성과급 지급, 각종 수당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현행 2개 조가 8·9시간씩 근무하는 '8+9 주간 2교대제'를 '8+8 주간 2교대제'로 전환하고 월급제를 도입하라는 안도 요구안이 담겼다.

월급제는 공장 가동률이 낮아 휴업하더라도 급여를 100% 보장받을 수 있다.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는 한국지엠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요구다. 무엇보다 올해는 임금협상만 진행하는 해로 주간 연속 2교대, 월급제 등은 교섭 대상이 아니다.

한국지엠 노조는 임금협상 외에도 산업은행과 GM의 협약이 오는 10월 16일 종료됨에 따라 산업은행의 지분 판매를 막기 위한 투쟁도 벌인다. 최근 GM은 판매가 부진한 지역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631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3년간 영업적자 규모가 2조원에 달하는 회사다. 따라서 노조는 산업은행이 지분 매각에 나설 경우 GM이 철수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무리한 임금 인상과 근무조건을 요구, 스스로 회사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면서도 고용안정을 보장해 달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14차례의 노조 파업으로 1만5000여대의 생산차질을 입었다. 무엇보다 올 뉴 말리부 출시로 신차 효과가 한창인 시기에 파업이 벌어지면서 판매목표 달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바 있다.

올해 파업이 우려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시장을 반등시킬 신차 출시 시점에 파업이 예고됐다는 점이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초기 마케팅과 품질, 원활한 공급 등이 요구된다. 코나, 스토닉 등 하반기 신차가 연이어 출시되는 가운데 파업이 벌어질 경우 공급에 차질을 빚어 판매에 차질을 줄 수 있다. 또 파업 시기 차량을 구매할 경우 품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돼 소비자의 구매 의욕도 떨어진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소형 SUV 시장에 기대가 큰 상황이다. 

한국지엠 역시 최근에서야 올 뉴 크루즈 판매가 개선되고 있는데 파업이 벌어질 경우 지난해 말리부와 마찬가지로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판매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하반기가 중요한데 지난해와 같이 여름 내내 파업이 벌어진다면 자동차 업계 전체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파업이 우리 자동차 산업의 경쟁 기반을 약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소비자의 이탈과 부품업체 생태계 붕괴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귀족 노조가 자기 이익만 주장하며 회사에 피해를 주는 상황이 지속되면 생산기지 해외 이전만 부추기게 될 것"이라며 현대·기아차의 생산공장이 현재 해외와 국내 5대5인 상황에서 향후 7대3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기아차의 2분기 실적은 부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분기 현대차의 매출액은 25조6000억원, 영업이익은 1조4700억원을 기록할 것"이라며 "중국, 미국 부진을 상승세인 유럽, 인도, 러시아가 얼마나 상쇄시킬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송선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기아차는 국내 시장에서 수요 부진에 따른 판매 대수 감소를 겪었다"며 "미국과 중국은 각각 인센티브 증가, 점유율 급락 등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2분기 실적은 시장 기대치를 밑돌 것"이라며 "매출액 14조30억원, 영업이익 5210억원을 거둘 것으로 추정된다"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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