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으로 당신의 아이를 홀로 남겨두겠습니까?"

요즘 담뱃갑의 경고문구 중 하나다. 꽤나 도발적인 이 문구를 조금 삐딱하게 바라보면 '그렇게 계속 피워 대다가는 너는 십중팔구 암이나 심근경색, 당뇨 등 몹쓸 병으로 죽을 텐데, 한창 일해야 할 네가 없으니 물려받은 것 하나 없는 너의 아내와 자식들은 앞으로 뭘 먹고 살란 말이냐'란 뜻을 함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조금 더 과장하자면 '남겨진 가족들이 흡연으로 죽은 너를 대신할 다른 남편, 다른 아버지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그러니까 이 문장에서는 '우리는 비록 너를 해칠 담배를 팔고 있지만 너의 건강은 물론이고, 네 가족의 안위까지 걱정하고 있다'는 사려 깊은 마음까지 읽힐 정도다. 생각해보라. 신나게 물건을 팔면서 그 물건을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장사꾼이라니. 어떤 이의 발상인지는 몰라도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문구다. 뭔가 '친절한 금자씨'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이 뭔가 부조리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이 문구에도 나는 담배를 피우며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독신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므로 나에겐 홀로 남겨질 자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애교와 재치 넘치는 '협박문'은 나 같은 싱글 끽연가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좀 서글프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가족 없는 독신들은 이 문구에 비슷한 심경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 됐든 '내 임종과 장례식에는 내 후손들은 없을 것'이다. 내 죽음을 지켜줄 자식들은 없다는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의 모든 자발적 독신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내가 택한 길을 걸어온 것이다. 종족번식의 본능을 무시하고 기꺼이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이제 와서 신세타령을 한들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각설하고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생은 단 한번 뿐(You Only Live Once)'라는 의미의 '욜로(YOLO)'라는 풍조가 유행이란다. "나는 멋지게 오늘을 살겠어. 내일은 나도 몰라"라고 하는 '욜로족'의 정신은 애처롭다. 대부분의 '욜로족'들이 독신이거나, 혹은 자녀를 일부러 두지 않는 커플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희망과 미래를 잃어버린 세대. 사회적 환경요소들이 진화론의 원칙을 넘어섰다.

그동안 이 사회는 차고 넘칠 만큼의 원인들, 그러니까 욜로족을 양산할 이유들을 제공해 왔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담보하거나 희생하지 않겠다는 마음은 단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던 부모 세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욜로족에게는 육아를 위해 업(業)을 버리거나, 담배를 끊어 분유값을 충당하거나, 자식의 입학을 위해 소를 팔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럴 만큼 풍족한 '자원'이 없거나 장차 가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자원이란 자산, 교육 수준, 사회적 지위 등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날로 그 골이 깊어지는 '자원 배분의 양극화'는 홀로 버티기에도 빠듯한 세상을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 자식에게 '빈곤'을 물려주면 자신과 똑같은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마음까지 더해졌다.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지 않는 현실은 교육에 의한 자원의 증대를 기대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물론 과거와 같은 '효심에 기댄 자식 덕'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요즘 애들은 말이야,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 돈이 없다는 핑계만 댈 뿐이지. 아니, 예전에 우리 부모님들은 돈이 많아서 대여섯 명씩 낳고 키웠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건 무책임한 얘기라고."

이렇게 말하는 어르신들도 있을 수 있겠다. '자원' 혹은 '부(富)'를 대하는 인간들의 태도는 상대적이라는 점을 간과한 탓이다. 대다수가 못 살던 시절, 그러니까 자원 배분이 대부분 제한적이던 시절에는 오히려 자녀의 존재가 부족한 자원을 대체할 수 있었다. 자녀의 수는 노동력의 정도를 의미했다. 장성한 큰 아들이 중동에 나가고, 작은 딸이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집으로 부치는 돈은 노부모의 비교적 풍족한 노후를 책임졌다. 학교 급우들이 똑같이 김치와 마늘짱아치로 점심을 먹는다면 문제가 될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아껴두면 썩는다. 월급을 수십 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데 왜 그런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인가. 지금 당장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는데 참으라고? 편히 늙기 위해 빛나는 젊음을 바치라고? 편히 늙어 죽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 해도 젊은 욜로족들의 확산은 안타깝다. 저출산을 걱정하는 국가적 관점에서가 아니다. 강남에 아파트를 사고, 고시에 합격하고, '갑'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현재에 만족한다는 것은 곧 꿈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호혜적 이타주의가 사라진 시대, 그러니까 내가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면 타인도 나에게 그럴 것이라는 기대마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황량한 시대에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은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도전하지 않는 젊은이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슬픈 일이다. 소비만 남은 욜료족. 오직 '나'만을 위해 산다는 조로(早老)하는 젊음. 세상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튼 담배를 끊기가 더 힘든 이유가 추가됐다. "흡연으로 가족도 못 만들고 홀로 가시겠습니까?" 이런 경고 문구는 어떨까. 욕먹을까. 겁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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