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원 기자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어쩌면 이 시대 2030세대가 하루 중 가장 먼저 내뱉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학교, 혹은 직장에 가기까지 집에서 가족과 대화할 일이 잘 없다는 얘기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면서야 그날 처음으로 입을 떼는 거다.

취업 문제를 비롯해 가족들의 우려 섞인 각종 질문이 청춘들에게 크나큰 짐이 된 지 오래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 분투 중인 청년들에게 건네지는 물음은 듣기 싫은 잔소리 취급만 당하게 됐다. 청춘들에게는 그 짧은 한마디가 ‘무기력증의 기폭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잔소리로 귀결되는 대화를 원치 않아 결국 입을 다문다.

오는 10월 황금연휴를 앞두고 휴가 계획 세우기에 신이 난 이들 속에서도 청년들은 속앓이만 하고 있다.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에는 뾰족한 질문 세례가 연거푸 이어질 테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당연지사다. 취업, 결혼, 집 장만 등. 단어의 배열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듯하다.

얼마 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유시민 작가를 상대로 토론하는 코너를 진행했다. 토론 주제는 ‘지금 20대는 역사상 가장 어려운 세대인가’였다. 자타공인 범접하기 어려운 언변의 소유자인 유시민에게 맞서게 된 건 앳된 얼굴의 20대 대학생이었다.

이날 유시민 작가의 답변을 정리하자면 ‘NO’였다. 지금의 20대도, 다음의 20대도 각자의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 타당한 말이다. 1950년대 전쟁 전후 세대들의 빈곤을 떠올려만 봐도 작금의 젊은이들은 무척이나 호화로운 삶을 영위 중이다.

이날 유시민은 ‘어렵다’는 감정은 주관적이라 측정하기 어렵다면서도 경제, 사회, 문화 등과 관련한 객관적 지표로 따지면 과거보다 지금 세대의 삶이 낫다고 설명했다. 청년들이 투표도 하고 목소리를 내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그 여대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 여건과 생활환경이 진보하는, 객관적 지표의 향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이 시대 청춘들의 슬픔은 계층상승을 꿈꿀 수 없는 데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나 역시 학생의 생각과 같다. 동시대 청춘들이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는 ‘희망의 부재’에 있는 게 아닐까. 지금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여겨지는 공무원 시험에서는 1.8%의 ‘위너’만이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올해 9급 지방공무원 필기시험에는 22만8368명이 몰렸다.

본인만 해도 태어난 이래로 ‘한국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매일같이 신문 한 면을 차지하는 건 ‘경제위기’에 관한 기사였고, ‘최대 실업률’이라는 헤드라인이었다. 만성적인 경제 저성장 속에서 무작정 변화하라고만 강조하는 윗세대들의 모습이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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