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정규직화 가속..카드·보험업계 “공론화 이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공언하면서 금융권이 술렁이고 있다. 금융권은 새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비정규직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실행작업에 속도를 내는 추이다.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낮은 은행업권 내에서는 실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단행을 확정짓는 곳도 나타났다. 반면 비정규직 비율이 30%를 웃도는 카드업계에서는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 전환 부담 적은 은행권..IBK기업·시티銀 정규직화 돌입

새 정부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자 가장 빠르게 행보를 함께 하는 곳은 은행권이다. 시중은행 대부분은 이미 대규모의 정규직 전환 작업을 마쳐서 부담이 적은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 2007년 우리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노사 합의를 통해 약 310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2011년 신한은행(약 1000명), 2014년 KB국민은행(약 4200명), 2015년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약 1800명) 등 주요 은행 대부분이 비슷한 절차를 거쳤다.

17일 은행 경영 공시에 따르면 변호사·세무사 등 전문계약직과 단시간 근로자를 포함한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농협은행 2979명 △KB국민은행 794명 △신한은행 736명 △우리은행 576명 △IBK기업은행 455명 △KEB하나은행 442명 등이다. 다만 IBK기업은행은 준정규직인 무기계약직 인원 3056명이 별도로 존재한다. 전체 직원 수가 KB국민은행 2만622명, 농협은행 1만6428명, 우리은행 1만4971명, 신한은행 1만4555명, 하나은행 1만4059명, 기업은행 1만2071명인 점을 감안하면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을 제외하고 기간제 근로자 비중이 상당히 낮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씨티은행과 기업은행은 이미 전날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씨티은행은 무기계약직인 창구 전담직원과 일반사무 전담직원 300여명 모두를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해당 무기계약직 직원들은 올해 중으로 정규직 5급으로 전환되며 절차가 마무리되면 전문직 혹은 전문 계약직을 제외한 대부분 직원이 정규직이 된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무기계약직인 창구 담당 직원 3000여명의 정규직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한 노사 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논의를 해왔다.

타 시중은행들도 기간제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모양새다. 현재 기준 기간제 근로자가 가장 많은 NH농협은행 측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는 논의되거나 검토된 게 없지만 관련 부서에서는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이미 기간제 근로자는 없다고 봐도 된다는 설명도 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기간제 근로자에 명시된 인원은 파트타임과 전문계약직이므로 사실상 기간제 근로자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우리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지난 2014년도에 모두 단행한 셈”이라고 답변했다.

신한은행 관계자 또한 “올해 1분기 공시자료에 명시된 781명으로 따졌을 때 기간제 근로자 중 500여명이 회계사·변호사·세무사 등과 같은 전문 계약직이나 지점장 퇴직 후 관리전담으로 재취업한 경우”라며 “이들은 사회적 약자 개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머지 사무인력이 일반 계약직인데 이 직원들도 채용할 때 2년 근무 후 정규직 채용 조건이 있었다”면서 “올해부터는 전환 채용 조건도 없애고 처음부터 정규직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 신한 측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한 논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카드·보험업계 “공공기관부터 진행해야..구체적인 진전 없어”

새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카드업계는 긴장하는 추이다. 카드업계는 종합계약직, 콜센터 직원 등 특수근무형태가 많아 계약직 비율이 높다. 현재 카드업계는 민간기업의 정규직화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방향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에 비정규직 제로 정책 여파가 가장 먼저 미칠 것이라는 데는 동조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기준 8개 카드사의 계약직 비중은 평균 15%가량이다. 이중 현대카드의 계약직 직원은 692명으로 전체 임직원 2259명 중 30.63%로 집계됐다. 우리카드는 563명 가운데 계약직이 160여명으로 비중이 26.41%였다. 롯데카드는 1724명 가운데 계약직은 423명(24.55%)으로 조사됐고, BC카드는 837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131명(16.19%)이었다. 삼성카드와 신한카드는 계약직 직원이 각각 262명과 285명으로 비정규직 비중이 12.39%, 9.05%로 나타났다. 하나카드는 787명 중 44명(5.59%)이 계약직이고, KB국민카드는 1576명 중 54명(3.42%)이 계약직이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계약직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은 파견 업체 소속으로 이뤄지는 간접 고용을 직접 고용으로 돌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 출범이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아직은 크게 얘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관청 등 공공기관부터 정규직화가 이뤄진 다음에 논의해야 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정규직화에 대한 부분은 분명히 매우 부담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카드업계 관계자는 “은행쪽에서는 텔러행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추이지만 카드 쪽은 상황이 또 다르다”면서 “아직 업계에서 (정규직화 관련) 회자되는 부분은 없는 것으로 안다. 콜센터의 경우에도 파견보다 도급이 많아서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고 답했다.

보험업계에서도 공공기관부터 시작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멀지 않아 보험권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규직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거나 개별 보험사가 자사의 노동조합과 논의를 시작하는 등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구체적인 진전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보험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수가 적은 편은 아니다. 고용노동부 워크넷에서 국내 주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비정규직 수를 살펴보면 일부 보험사의 경우 비정규직수가 전체 직원의 10%를 상회하기도 하며 또 반대로 일부 보험사는 비정규직 수가 상당히 미미한 수준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권의 인건비가 높은 편이어서 정규직화가 진행되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아직 논의되는 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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