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권 사각지대 '중규직'..열악한 고용환경 해결책 시급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이른바 대형 할인마트 '빅3' 내 비정규직이 사라지고 있다. 비정규직이었던 계산원과 판매영업직 대다수가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상태다. 그러나 무기 계약직 사원들의 고용 현황은 정규직과 천양지차다. 무기 계약직이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다.

◇ 임금 상승·승진 없는 '무기 계약직'..정규직 생색만

마트들이 지난 2007년부터 적극적으로 도입한 '무기 계약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성격이라는 뜻에서 '중규직'이라고도 불린다.

이마트는 2007년 계산원 4223명, 2013년 판매사원 1만772명을 각각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신규 채용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기준으로 계산원, 매장직원 등 9236명의 무기 계약직을 고용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은 엄밀히 정규직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 고용 계약이 연장되기 때문에 고용 안전성을 갖췄을지 모르지만, 근무 연차에 따른 임금 상승이나 승진 등의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일반 정규직 사원과는 전혀 다른 임금과 직급 체계를 별도로 적용받는 것이다.

지나치게 낮은 임금 수준 역시 논란거리다. 무기 계약직의 대부분은 현재 마트로부터 최저임금과 같거나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정도의 시급인 6500~6900원을 받고 있다. 1주일에 40시간 이상을 근무한다고 해도 월 급여는 130만~150만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다수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은 "무기 계약직은 고용이 자동 연장된다는 측면에서만 정규직 성격을 띠고 있을 뿐, 정년까지 승진과 임금 인상이 거의 없는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10년, 20년을 일해도 신입 사원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는 무기 계약직 도입만으로 대형 유통업체들이 비정규직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 '이중삼중' 고용 속 모르는 새 소속 회사 바뀌기도

대형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납품업체 직원들의 고용 불안은 더 심각하다. 이들은 마트 등 매장에서 협력업체 제품을 진열하고 판매하지만, 마트와 협력업체 모두에 속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당수의 고용이 '제3자'인 전문 인력업체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여파로 대형마트 매장에서 옥시 제품이 단기간에 철수됐는데, 이때 옥시 제품을 십여 년간 판매해온 매장직원들도 함께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많은 판매사원은 그제야 자신들이 옥시에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 인력업체 소속 파견 직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마트, 협력업체, 인력업체 등이 얽힌 '이중삼중' 고용 관계 탓에 일하는 직원들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속 회사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인력업체의 고용 승계가 순조롭지 못하고 직원의 근무 기간이 12개월 미만일 경우, 퇴직금도 받지 못하고 실직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현장 근로자들의 하소연이다. 퇴직금 지급을 피하려고 애초에 11개월 단위로만 근로 계약을 맺는 인력업체까지 있다.

더구나 협력업체 판매직원들은 해당 마트의 유니폼, 모자, 심지어 명찰 등까지 영업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직접 자기 돈으로 사서 써야 한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마트나 협력업체나 인력업체나, 그 누구도 따로 비품을 지급해주지 않는다"며 "처음 배치받고 마트 측에 찾아가 유니폼 상의와 모자, 명찰을 각 1만5000원, 4000원, 1700원을 주고 사면서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잠재 절도범 간주하고 감시"..푸대접 극심

인권 차원에서도 유통 근로자들에 대한 푸대접은 이어지고 있다. 앞서 2014년 이마트는 계산원 등 무기 계약직원들의 사물함을 무단으로 뒤져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이마트 노조는 "직원을 잠재적 절도범으로 간주한다"고 반발하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현재 마트 협력업체 직원들도 비슷한 모멸감을 느끼고 있다.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세제를 하나 팔면 끼워주는 키친타올과 같은 증정품은 보통 현장에서 바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판매직원들이 관리한다"며 "하지만 일부 마트 지점은 '증정품이 자꾸 없어져 손실이 난다'면서 마트 창고에 증정품을 두고 판매직원들이 오면 일일이 검사를 거쳐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세태 속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유통 대기업들의 고용 정책도 보다 전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민정 교육선전국장은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최저임금 1만 원'을 마트 등 유통 부문에서부터 시행해봤으면 좋겠다"며 "유통 대기업들은 재정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이익을 조금만 양보해서 유통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조건을 개선해주면, 서비스의 질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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