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대일로 폐막 기자회견하는 시진핑 중국 주석 사진: CCTV 화면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정상포럼 개막 기조연설에서 세계화와 자유무역, 개방을 강조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거세진 반세계화 흐름 속에 중국이 세계화의 새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시 주석은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도 세계화·자유무역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일대일로는 육지와 바다로 중국에서 유럽에 이르는 고대 무역로인 ‘실크로드’를 복원하는 사업이다. 아시아,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 걸쳐 관련국이 60개국이 넘는다.

일부 낙관적인 비공식 추정으론 중국이 건설하는 철도와 에너지 파이프라인, 항만 등 무역 인프라에 최대 4조달러(약 4516조원)가 투입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대일로 사업을 흔히 ‘제2의 마셜플랜’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유럽을 재건한 마셜플랜에 쓴 돈은 당시 130억달러, 현재 가치로 약 1300억달러에 불과하다.

글로벌 기업과 주변국은 일대일로 사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이날 개막식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롯한 29개국 정상과 130여개국 대표단, 기업인 1500여명이 참석해 호황을 이뤘다. 시 주석은 기조연설에서 ‘세기의 프로젝트’인 일대일로 사업에 조만간 1130억달러를 더 투입하겠다며 기대감을 자극했다.

2013년 첫 구상이 나온 일대일로 사업은 이미 진행형이다. 중국과 라오스를 잇는 고속철도와 스리랑카 항만시설, 베트남과 파키스탄의 발전소, 네팔 국제공항 등 건설 현장에서 중국의 불도저와 크레인 작업이 한창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4년간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쓴 돈은 약 500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중국 정부가 국내 경기부양에 쓴 돈에 한참 못 미쳐 일대일로 사업이 과대포장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데이비드 달러 전 세계은행 중국 책임자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일대일로 사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중국의 자본이 다른 데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 사업을 주도하는 중국 양대 국책은행인 중국국가개발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지난 수십년간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에 대규모 대출을 해줬지만 최근엔 일대일로 사업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정황을 찾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일대일로 주변국보다 선진국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 기업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중국 국유·민간기업은 2014년 이후 일대일로 관련국보다 미국에 더 많은 돈을 투자했다. 또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일대일로 관련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는 지난해 전년대비 2%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는 18% 줄었다. 그 사이 중국의 대외 직접투자 규모는 사상 최고치 경신행진을 했다. 중국 정부가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에 제동을 걸었을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일대일로 관련국에 투자한 돈 가운데 인프라 투자에 쓰인 돈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일대일로 관련국 중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나라가 싱가포르라고 하는데 이 나라는 이미 높은 수준의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WSJ는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에 큰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투자에 소극적인 건 중국의 경제여건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일대일로 사업이라는 지정학적 유산으로 지난 수십년간 미국과 유럽이 쥐고 있던 세계 리더십을 손에 넣으려 하지만 결국은 ‘제 코가 석 자’라는 얘기다.

중국 경제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하자 중국에서는 최근 자본 이탈이 가속화 있다. 자본이탈은 위안화 약세를 부추겼고 위안화 약세는 또다시 자본이탈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일으켰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위안화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2014년 4조달러로 정점을 찍었던 외환보유액은 3조달러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격히 불어난 채무도 중국의 대외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의 3배에 이를 전망인 중국의 부채는 이 나라 경제의 뇌관으로 통한다. 국내에서 이미 잠재적 부실위험을 떠안은 중국 은행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해외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WSJ는 이미 경제적 자신감을 잃은 미국과 유럽이 대담한 일대일로 구상에 맞는 대응책을 내놓을 여유가 없겠지만 중국의 청사진도 한계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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