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쟁탈전/①]445조 퇴직연금 시장 '빅매치'…은행권·증권사 경쟁 본격화
증권사, 다각화 운용으로 원리금 보장형 수익률 우위 은행권, 실적배당상품 강화·디지털 혁신으로 맞대응
퇴직연금은 더 이상 먼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당장의 재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시장점유율과 수익률, 상품 구성, 서비스 다각화까지 전방위적 주도권 다툼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이에 <비즈니스플러스>는 단순한 금리 비교를 넘어, 업계 전반에서 어떤 경쟁이 전개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편집자 주>
최근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활발해지면서 은행권과 증권사 간 고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실물이전 서비스로 금융사 이동이 자유로워진 가운데 증권사가 높은 수익률을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며 전통적 강자인 은행권을 위협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퇴직연금 시장 규모는 약 445조원이다. 이중 은행권이 235조원(52.9%), 증권사가 112조원(25.3%)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은행권과 증권사 퇴직연금 적립금 모두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권 퇴직연금 적립금은 약 225조7684억원, 증권사는 약 103조9257억원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들어서도 상승세는 이어졌다. 은행권 적립금은 235조5616억원, 증권사는 112조6121억원으로 집계됐다. 6개월 만에 은행권은 약 9조8000억원, 증권사는 8조7000억원 가까이 눌었다.
특히 증권사의 적립금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최근 2년간 은행권 적립금은 4.3% 증가한 가운데 증권사는 8.4%의 증가율을 기록하며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은행권과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상품 유형에 따라 차이가 나타났다. 먼저 확정급여형(DB)에서는 증권사가 은행을 앞섰다. 증권사 DB 수익률은 평균 3.87%를 기록했으며 은행은 평균 3.43%에 머물렀다. 확정기여형(DC)에서는 은행이 평균 3.9%로 증권사(평균 3.7%)를 소폭 앞섰다.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서는 증권사가 은행권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증권사의 개인형퇴직연금(IRP) 보장형 1년 평균 수익률은 3.87%로 은행권(3.03%) 대비 0.84%포인트 높았다. DC 보장형 수익률도 증권사 3.7%, 은행권 3.12%로 증권사 우위가 뚜렷하다. DB 보장형은 증권사가 3.71%로 은행권의 3.26%보다 약 0.45%포인트 높았다.
이는 증권사가 원리금 보장형 상품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공격적이고 다각화된 자산운용을 통해 운용 효율성을 높인 데 기인한다. 반면 은행권은 예금·채권 중심의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유지해 안정성은 확보했으나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즉, 증권사는 자산배분과 운용 역량 강화를 통해 수익률 우위를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리금 비보장형 상품에서는 은행권이 증권사를 근소하게 앞섰다. '위험자산 투자는 증권사에서, 안전한 투자는 은행에서'라는 통념을 벗어난 결과다. 은행권의 DC 비보장형 1년 평균 수익률은 7.0%로 증권사 6.34%를 0.66%포인트 앞섰다. DB 비보장형은 은행(6.1%)이 증권사(5.95%)보다 0.15%포인트 높았다. IRP 비보장형도 은행권이 6.4%로 증권사 6.31%를 약간 상회했다.
이는 올해 증권사 고위험 상품들의 일시적 부진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사는 주로 고위험·고수익 테마형 상장지수펀드(ETF)와 해외 주식형 상품에 투자하는 반면, 은행권은 안정성을 강조하면서도 타깃데이트펀드(TDF) 같은 장기 성장형 상품을 중심으로 비보장형 상품 수익률을 높였다.
은행권은 전통적으로 원리금 보장형 상품과 대면 상담 채널에 강점이 있다. 예금·보험 등 상품군이 주를 이루며 안정성과 고객 신뢰라는 부분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최근 은행권은 TDF와 맞춤형 포트폴리오 등 장기 투자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등 자동화 솔루션을 강화하고 있다. 전국영업점과 대면·비대면 연계 서비스 등 채널 경쟁력도 지속적으로 확대 중이다.
증권사는 ETF, 펀드, 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ELB), 실적배당형 상품 등 다양한 위험자산 투자에 특화돼있다. 최근 증권사는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 로보어드바이저(RA), 상품 구독형 전략에 적극적이다. 인공지능(AI)·글로벌 ETF 상품 출시 등 시장 흐름을 빠르게 반영한 신상품도 공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증권사로의 '머니무브'와 관련해 은행권 관계자는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고 ETF 종류를 늘려 실적배당상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디폴트옵션 성과 관리를 위해 운용사와 정기 미팅을 진행하고 현금성자산 과다 보유 고객에 대한 집중 관리를 통해 실질적인 수익률 제고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콜봇 시스템 구축과 유튜브 채널을 활용한 콘텐츠 고객관리 등 디지털 혁신을 통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는 한편 DC연금케어서비스로 기업고객 밀착관리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지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