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조지아주 사태 원인된 제지공장 폐쇄에 숨겨진 뜻은

2025-09-22     이용웅 칼럼
이용웅 주필

한국 증시는 물론이고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증시는 요즘 '사상 최고치'라는 단어가 너무 자주 등장한다. 때문에 증시가 더 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거품이 꺼질 때가 됐다는 비관론을 차츰 압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유럽, 아시아 주요 지수들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며 투자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내고 있다. 2025년, 전 세계 증시는 마치 엔진에 과도한 연료를 주입한 듯 질주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의 3대 주가지수는 모두 장 중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종가 기준으로도 모두 최고치를 찍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72.85포인트(0.37%) 오른 4만6315.27에 거래를 마감했고 나스닥종합지수는 160.75포인트(0.72%) 상승한 2만2631.48에 장을 마쳤다.

우선 미 연방 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기조가 유효하다. 17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한 이후 연내 두 차례 더 인하를 시사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에 틱톡을 넘기기로 하는 등 미·중 갈등도 완화 기미를 보이는 것도 증시에 우호적인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도 확실해져 미중갈등을 매개체로 해서 전세계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2기 출범과 함께 한때 폭락장세를 연출하던 전세계 증시는 이제 관세전쟁이라는 전례없는 위기에서 이제 탈출하고 있는 것인지. 물론 아직 그 어떤 결론도 섣불리 낼 수 없는 상황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서도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 증시에 대해서는 전례없는 낙관론이 등장하는 것 역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마크 프레스켓 모닝스타웰스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한국이 앞으로 10년간 아시아는 물론 글로벌 신흥시장 중에서도 최고 수익률을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중국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을 살 것이라는 말도 했다. 

코스피(빨강, 오른쪽)·미국 다우지수 추이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조지아주 제지공장을 덮친 목재산업 불황이 말해주는 미국경제 이야기   

미국 이민당국에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의 '불법 이민자'를 제보했다는 정치인 토리 브래넘은 현대차 등 한국 기업이 조지아 주민을 고용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인근 제지공장이 폐업하면서 해고된 1000명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브래넘은 미 정부가 한국 기업에 세제 혜택을 줬지만 이들 기업은 조지아 주민을 고용하지 않았으며 지역경제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면 한국인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 미국에 정식 비자 받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지만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숙련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하는 미국 기업들에게 1인당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마존에만 이같은 외국인 전문 인력이 1만여명이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경우에도 5000여명이 근무하는데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미국 빅테크 산업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 역시 매년 2000여명이 미국 IT업계 등으로 진출하고 있는데 오히려 미국의 이같은 조치가 국내기업들의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주식시장에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조지아주의 대표적인 제지회사인 '조지아 퍼시픽'은 올해 초 공장을 폐쇄하면서 5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몇 주 후, '인터내셔널 페이퍼'는 사바나와 라이스버러의 공장을 폐쇄하고 1100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없앨 것이라고 발표했다. 1930년대에 처음 문을 연 사바나 공장은 대공황 이후 꾸준한 일자리를 제공해왔기에 지역사회에 미친 충격은 더욱 컸다. 이들에게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미국 증시 이야기는 그야말로 '딴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들 공장 폐쇄들이 단순한 개별 기업의 결정만은 아니고, 더 넓은 목재·펄프 산업의 구조적 변화, 수요 둔화, 원자재 및 유통비 상승 등과 밀접히 연계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미국 내 전문직 취업이 가능한 'H-1B' 비자의 수수료를 100배 증액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새 비자프로그램 행정명령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 / 사진=연합뉴스

물론 제지산업 그 자체가 사양산업임은 부인할 수 없다. 종이 제품(신문, 오피스용지 등)에 대한 수요는 오프라인 활동 축소, 디지털화 등으로 장기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전자상거래 포장재 수요는 증가 했기에 버틸 수 있었는데 이 역시 경쟁 심화, 인플레이션 압력, 소비자 지출의 둔화 등이 수요 증가를 제한하고 있다. 

여기에다 톱밥, 원목 및 펄프 목질 원료의 조달 비용 상승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 전반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물류비·연료비 증가 등이 공장 운영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일 최근 목재 선물가격이 8월 고점에서 24% 급락함에 따라 주택 시장의 위기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보도했다. 목재가격은 8월까지 급등하다가 수요 부진, 과잉 재고 가능성, 주택시장(주택 착공·인허가 → 건설활동)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반락한 것이다. 미 행정부는 철강, 알루미늄 등과 함께 캐나다에서 주로 수입하는 목재에 대해서도 고율의 관세를 고집하고 있어 미 수입업자들이 서둘러 캐나다산 목재를 수입해서 쌓아놓다가 주택시장 반등이 늦춰지자 가격폭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연준의 금리 인하 효과가 전체 상업용 부동산(CRE) 시장에 아직 고르게 퍼지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고 프라임 자산, 고품질 건물, 중심가에 대한 수요 회복은 빠르지만 노후 오피스 등 서민생활과 연계된 자산 시장 전반은 여전히 위축된 모습이다. 여기서 말하는 CRE 시장은 'Commercial Real Estate'의 줄임말로 주거용 부동산과 구분되는,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부동산 시장을 말한다. 

미국에서 지난 8월 단독주택 착공 건수가 7.0% 감소하고 단독주택 건설 허가역시 2.2% 감소한 것과 관련해 로이터 통신은 "연준의 금리인하가 고용 우려 속에서 주택 시장을 되살리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단독주택 건설은 미분양 신규 주택 과잉으로 인해 8월에 거의 2년 반 만에 최저치로 급락했으며, 이는 주택 시장이 이번 분기에 경제적 역풍으로 남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부동산은 미국 경제의 약 17~20% 비중을 차지하며, 건설, 임대, 투자, 금융, 고용, 소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산업이다. 특히 주택 시장과 CRE 시장은 금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연준의 정책 변화에 따라 경기 흐름을 좌우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협박 수준으로 미 연준에 금리인하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조지아주 제지공장의 폐쇄가 나비효과를 일으켜 한미 관세협상 전반에 부정적인 효과를 준 것을 단순한 우연이라 볼 수는 없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국은 물론이고 우리 경제 역시 실물경기와 지표경기 그리고 자산시장의 불균형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에 대비하고 준비해야함을 알려준다.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 사진=연합뉴스

◇관세협상과는 별도로 조지아주에서 사라진 공장에서 우리가 읽어야할 화두는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단순 조립 일자리라면 몰라도 제지공장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고도로 숙련된 배터리 관련 일자리 제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기업들이 조지아주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지만, 고숙련 기술 인력이 필요한 산업군이다. 제지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곧장 이직하기엔 기술 격차가 크고, 그 공백을 메울 한국 기술자들에겐 미국 정부가 '비자발급 10만달러 수수료'라는 장벽을 세우고 있다. 

조지아 제지공장 폐쇄는 한 지역의 슬픈 뉴스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미국 경제의 산업 재편, 기술 전환기 노동시장 불균형, 지방 경제 붕괴,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복합적으로 얽힌 사건이다.

주가지수의 고공행진 뒤에는 실물 경제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고용 없는 성장, 기술 발전에 뒤처진 지역, 보호무역주의로 인한 국제 긴장, 외국인 투자에 대한 역설적 규제… 이 모든 것이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정치 구호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경제정책은 단순한 경기 부양책을 넘어, 노동 재교육, 산업간 이행 지원, 지역 맞춤형 고용정책, 외국인 전문 인력 도입의 유연화 같은 정교한 구조개혁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조지아주의 풍경이 곧 우리나라 풍경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주식시장 활황은 분명 이벤트이다. 하지만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 증시 이면에는 조지아주 제지공장처럼 사라져가는 일자리들도 많다. 우리 경제 역시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을 키우면서 그에 걸맞는 신규 일자리를 만들어야 증시 활황이 남의 일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 이벤트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앞장서 일자리 창출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치권 영역이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 역시 적절히 자제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