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치+/㉑]"죽을 때도 가난한 건…"
"가난하게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건 죄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어록이다. 마윈은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대표적 '빅리치'이면서 숱한 실패의 대명사격인 인물이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가난한 경극 배우였다. 어린 시절 마윈의 별명은 '못난이 윈'이었다. 못생긴 외모에 내세울 것 없는 부모 밑에서 제대로 정규 교육을 받기도 힘들었다.
그는 어린 시절 공부에도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고등학교도 한번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은 삼수를 해서 항저우사범학교에 정원미달로 겨우 들어갔다.
마윈의 실패 기록은 학창시절 뿐만이 아니었다. 번번이 취업 도전에도 실패했다.
23명을 뽑는 한 외국계 기업에 지원한 24명 중 유일하게 마윈이 탈락한 일화는 유명하다. 경찰이 되고자 4명이 뽑는 시험에 도전했던 것도 떨어졌다. 이 시험에 응시자는 5명이었고 마윈은 유일한 불합격자였다. 호텔 종업원으로 취직하려 해도 작은 키 때문에 번번이 퇴짜를 맞아야 했다.
실패가 일상이었던 마윈에게 희망이 된 것은 '영어'였다. 가난했던 그는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를 능숙하게 하면 외국계 기업으로 취직도 쉽고, 나중에 해외 취업으로 더 큰 세상에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외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와 호텔 주변을 찾아가, 만나는 외국인들마다 말을 걸고 다니기도 했다.
실제 영어는 마윈의 인생에 반전의 계기가 됐다. 항저우사범학교에 결원이 생겨 입학하게 된 것도 그의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이후 영어는 그의 행보에 결정적이 도움이 됐다. 대학 시절 학생회 주석에 뽑힌 것도 영어가 역할을 했다.
그는 1988년 항저우 전자과학기술대학의 영어강사로 들어갔는데, 항저우 사대 졸업생 중 대학 강사로 바로 임용된 유일한 사례였다. 그는 영어강사로 인기를 끌었다. 그의 강의는 다른 과 학생들의 청강생까지 포함해 늘 붐볐다.
박봉이었던 영어강사 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해 다른 야간대학에서도 강의를 한 마윈은 무역 업계 사람들과도 교류하게 됐다. 이때 그에게 영어를 배운 몇몇은 훗날 그와 함께 알리바바의 창립 멤버가 되기도 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것도 어찌보면 영어가 계기가 됐다. 영어 공부를 하며 열망했던 미국을 방문한 그가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란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친구 사무실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한 그는 중국 관련 검색이 되지 않자, 당시 인터넷 불모지였던 중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결심하게 됐다.
그가 1995년 4월 중국 최초 인터넷 기업으로 설립한 것이 '하이보 네트워크'다. 하지만 그의 첫 기업은 당시 열악한 인터넷 인프라와 대기업들의 견제 등으로 2년도 안돼 문을 닫았다.
이후 또 다른 실패를 거듭하며 그가 1999년 세 번째로 창업한 것이 바로 '알리바바'다. 알리바바는 마윈의 작은 아파트에서 18명의 동료들과 함께 자본금 50만 위안(당시 한화 약 7000만원)으로 시작됐다.
알리바바의 창업 초기는 순탄치 않았다. 창업 멤버가 하루 17시간씩 일하면서 겨우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별다른 매출이 없어 직원 월급은 빚을 내야 겨우 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윈은 다른 기업들의 투자 의향에 대해 '알리바바를 너무 저평가했다'는 이유로 38차례나 거절했다. "첫 벤처 투자 조건이 추가 투자 유치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적은 금액의 투자는 받지 않았다." 마윈이 훗날 언론 등 인터뷰를 통해 밝힌 얘기다.
실제 마윈의 알리바바는 얼마 안가 골드만삭스로 부터 5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아냈다. 골드만삭스가 미국 유명 기업인 만큼 향후 알리바바의 브랜드 가치 향상에 도움 될 것이란 게 마윈의 판단이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알리바바에 2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손정의 회장이 단 6분간 마윈의 설명을 듣고 투자를 결정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후 마윈과 알리바바의 승승장구는 이어진다. 2001년 알리바바는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마윈은 중국인 최초로 '포브스'지 표지 모델이 됐다.
2007년 홍콩 주식 시장에 상장된 알리바바는 마침내 2014년 뉴욕 주식 시장에도 상장됐다. 뉴욕 주식 시장 상장 당시 알리바바의 공모가는 총 217억7000만 달러로 당시 동종기업인 페이스북을 넘어섰으며 아마존, 이베이를 합친 것보다 높았다.
마윈은 이제 알리바바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최신 IT기술 투자에 주력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이 그의 투자 주력 키워드다.
인터넷 불모지인 중국에서 최초 전자상거래 업체를 창업해 한때 중국 최고 부자에 올랐던 마윈의 재산은 엔트그룹 등 그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가치 하락 등으로 현재는 전성기에 비해 저평가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불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마윈의 재산은 1800억 위안(한화 약 3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크게 2가지다. 무언가를 하지 않았거나, 무언가를 크게 말아먹었거나. 가난한 사람의 90% 이상은 전자다"라고 말했던 마윈. 그의 말처럼 마윈은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부자로 생을 일군 '빅리치의 대명사'가 된 셈이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