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CVC 금산분리 완화시 금융권 '새로운 기회'와 '안정성 우려' 공존
벤처 생태계로의 자금 유입 확대 전망 단계적 접근·손실 흡수장치 마련 필요
정부가 '생산적 금융'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관련 금산분리 규제 완화 필요성이 떠오르고 있다. 금융권은 새로운 투자 기회를 기대하면서도 금융시장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함께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최근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에서 "CVC를 금산분리로 묶어놓은 곳은 한국뿐"이라며 "CVC를 금산분리 규제에서 제외할 경우 셀트리온이 5000만원을 투자하면 은행은 5억원을 투자할 수 있다"고 말해 CVC 관련 금산분리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금산분리는 금융회사(은행, 보험 등)와 일반 기업(제조업, 서비스업 등)이 서로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다. 금융회사와 일반 기업이 각각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 제도는 198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도입됐고 이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기업 계열 금융사가 부실 계열사에 과도하게 대출해 금융위기를 심화시킨 것을 계기로 한층 강화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지주회사가 CVC를 설립할 수 있으나 몇 가지 제약이 따른다. 외부 차입은 자본금의 200%까지만, 다른 투자자로부터 조달하는 자금은 전체의 40%까지만 허용된다. 또한, 여러 투자자의 자금을 펀드 형태로 모아 운용하는 전문 펀드 운용사(GP) 역할은 할 수 없다.
CVC 관련 금산분리 규제 완화시 기대되는 효과로는 투자 규모 확대, 금융권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 벤처 생태계 활성화 등이 있다. 먼저 대기업은 어떤 기술이 좋은지 알아보는 전문성이 있고, 은행은 자금력이 있어서 둘이 힘을 합치면 더 큰 투자가 가능해진다. 현재 국내 14개 지주회사 CVC의 평균 자산은 326억원에 불과하지만 규제 완화시 규모가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CVC 투자가 활성화되면 은행들은 유망한 벤처기업에 투자해서 그 회사가 성장할 때 함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더 많은 돈이 벤처기업들에 흘러가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혁신적인 사업을 하는 회사들이 더 쉽게 사업을 시작하고 키울 수 있게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CVC 금산분리 완화가 신성장동력 확보와 혁신금융 활성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핀테크·인공지능(AI)·친환경 등 미래산업에 은행권 자금이 안정적으로 유입될 수 있다면 산업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시장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무리한 투자가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단계적 접근과 투자 비중 제한, 손실 흡수장치 마련, 전문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한, 정부가 혁신기업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금융회사가 적절한 투자 대상을 선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다.
해외의 경우 미국은 은행의 직접적인 기업 소유는 금지하지만 CVC 투자는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구글벤처스, 인텔캐피탈, GM벤처스 등이 활발히 활동해왔다. 다만 닷컴버블 붕괴 직후 2000년대 초 CVC의 70% 이상이 투자 활동을 중단하거나 철수하며 손실을 입은 바 있다. 일본은 금산분리 규제가 없어 은행들이 자유롭게 CVC를 운영한다. 미쓰비시UFJ금융그룹은 지난 2020년 동남아 차량호출 플랫폼 '그랩(Grab)'에 투자해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경기가 나쁠 때 은행계 CVC가 부실 기업에 자금을 무리하게 공급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다. 유럽연합(EU)도 금산분리 규제가 없어 금융회사와 산업자본 간 상호 투자가 제약 없이 이뤄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CVC 관련 금산분리 완화는 혁신기업 자금공급 측면의 순기능이 있으나 금융안정·소비자보호·이해상충 관리 장치를 충분히 갖춘 범위에서 단계적·제한적으로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류지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