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한미정상회담, 트럼프 체면 살리고 실리 챙기는 길 찾아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 이후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전쟁을 벌이고 미국내 갈등도 갈수록 증폭되고 있지만 야당이 된 미국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민주당은 역대급 비호감의 포위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7월 ‘안잘론-파브리지오(Anzalone‑Fabrizio)’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에 대한 호감도는 33%에 불과해 지난 30년간 최악의 이미지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등 거의 전분야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에 밀리고 있고 오로지 의료·백신 정책에서만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갤럽여론조사 역시 지난 2분기 민주당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호감도는 34%에 불과해 1992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진보·중도·온건좌파가 뒤섞여 있어 정책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은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강경한 보수’라는 메시지로 통일된 이미지 구축하고 있어 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가령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달 16~20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6%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고 특히 공화당 지지층 내에서는 88%라는 압도적인 숫자가 그를 지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는 25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떠한가.
한국갤럽이 지난 12~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7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 지지율은 59%로 과반을 넘기고 있다. 다만 직전 조사에 비하면 특별사면 등에 따른 영양탓인지 5%포인트 떨어진 상태이다. 야당인 국민의힘 지지도가 22%로 최악의 상태인 것도 미국 야당인 민주당의 처지와 비숫하다.
두 대통령의 지지율 추이만 보면 각각 국내에서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을 보면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이후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이다 8월들어 기업실적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추가적인 재료의 공급이 부족해 주춤거리면서 7월 종가에 비해 마이너스로 밀리고 있지만 미국 S&P500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이 대조적이기는 하다.
이같은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한국 경제가 미국 경제에 비해 작금의 국제정세에 훨씬 취약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다.
가령 올 상반기 상위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을 1년 전과 비교할 때 SK하이닉스를 빼면 1.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게 현실이다.
어쨌든 한미 두 나라 정상은 이제 임기가 시작되는 첫 해이고 각각 자국민에게 일정한 성과를 과시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조건이라고 볼수도 있다. 물론 미국이 외교·경제 등 여러 가지 측면면에서 한국보다 훨씬 많은 키를 쥐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지만.
우리 정부로서는 무엇보다 국내외에서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을 높여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역대 진보정권의 한미정상회담 분위기를 반추해보면.
"미국이 없었으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피를 흘렸고, 대한민국은 미국의 지원 속에 발전해왔다."
지금 들으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마치고 했을법한 말로 들리지만 놀랍게도 지난 2003년 5월 14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노무현 대통령이 토로한 발언이다.
그렇다면 당시 국내외 정세는 어떠했던가. 정상회담이 있기 전 2002년 10월 3일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 일행이 부시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이른바 '2차 북핵 위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또 미국 정부는 이라크에 한국군을 파병하라고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었고 미군 재배치 및 방위비 분담 문제가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협상카드로 등장했다. 반면에 당시 노무현 정부는 한국 경제에 엄청난 이득을 안겨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추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김대중 정권보다 훨씬 진보적인 이미지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앞에 소개한 파격적인 발언을 한 이후 국내 진보진영에 균열이 생기는 후유증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미국의 요구에 맞춰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하기도 했다.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등 범진보진영 내부에서 '노무현 정신을 계승한다'는 말이 주술처럼 힘을 발휘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처럼 단순 반미(反美)를 넘어선 실용외교를 추구했기에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숱한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이에 앞서 2001년 3월, 김대중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부시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 사람(this man)을 존중한다. 그의 의견도 존중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여전히 우려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표현은 'this man'이었다. 이는 영어에서 단순한 지시어에불과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외국 정상에게 쓰기에는 직설적이고 거리감 있는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도 막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보수언론에서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을 '이 사람'으로 번역하기 이전에 '이 양반' 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미국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을 상스럽게도 '이 양반' 운운으로 폄하했다는 것인데 당시 기이한 풍경은 보수 언론들이 부시 대통령을 탓하기보다는 미국에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은 대목이다.
앞선 두 대통령과는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1기 시절 화끈한 외교적 행사가 많았다. 가령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회동이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분단의 바로 그 현장에서 3자 회동을 가진 것이다. 한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과 동시에 같은 장소에 선 것은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명명했던 부시 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핵 문제 해결을 최우선 순위에 두었기에 이같은 역사적 행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하노이 회담이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려놓아 지금까지도 한반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혼돈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실용외교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지금까지 분위기로 보아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승리했다는 분위기보다는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분위기에 맞춰주는 것이 성공방정식이 될지도 모른다. 이게 아주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트럼프의 축포에 분위기를 맞추면서 우리의 실익을 확보하는 방법을 과연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승리이후 외교 무대에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거래'를 선호하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안보에서 "미국이 이겼다"는 인식을 줄 수 있는 보도용 메시지를 만들기를 기대할 것인데 우리로서는 "실익을 챙겼다"는 내용 역시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주 앉는 8월 25일은 두 나라 모두 정권 교체 1년차이고 북핵 장기화, 미·중 경쟁이라는 삼중 압박 속에서 이루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항상 신뢰보다 거래를 추구하면서 숫자를 먼저 내세우고 동맹보다 '이익'을 중시했다. 심지어 그는 "적보다 동맹이 더 우리 미국을 뜯어먹는다"고 주장할 정도다. 아무튼 "공짜는 없다"는 그의 신조는 이번 회담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트럼프는 항상 상대방에게 "네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아무리 미국의 비위를 맞춘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존엄'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면 두고 두고 정권에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매우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전에 이뤄진 관세협상에서 우리가 제시한 약속에 대해 구체적인 플랜을 요구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대미투자 확대를 약속하면서도 미국과 한국 기업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호호혜' 방식을 추구하고 무엇보다 바이든 대통령 시절 한차례 나왔던 이슈이기는 하지만 '한미 기술동맹'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이 주효할지도 모른다.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총 370억달러(약 51조원)를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추가로 짓고 있는 삼성,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3700억원)를 들여 AI 메모리용 첨단 패키징 공장 건설을 시작하는 SK하이닉스, 미국 GM과 차세대 차량 공동 개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는 현대차 등 우리 기업들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최대한 선전하고 이 모든 것이 트럼프의 공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가장 어려운 이슈는 바로 방위비 증액, 전작권 전환,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 한미동맹, 안보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국내여론에도 아주 민감한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해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정치에 파급이 확산되는 불필요한 수사학을 최대한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지난 8일 기자회견에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닌 역량"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국내에서는 주한미군 축소 가능성을 내다보기도 했다.
주한미군의 축소나 철수 또는 한미동맹에 일정 부분 금이 가는 낌새가 보이면 가장 먼저 한국 주식시장이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에 정교한 관리가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해 1500억달러가 투입되는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계획을 한미간 방산· 원전· 우주 산업 협력 사업까지 확대시키는 초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도 있다.
앞서 언급한 여러 사례 등에서도 알수 있듯이 과거 진보정권에서의 한미정상회담이 국내 정치에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지렛대 역할을 해왔던 경험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국민통합정치를 위해서는 국내 보수세력과의 갈등은 물론 정권 내부의 노선차이(자주파·동맹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관리도 중요해진다.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원래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이벤트 성격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나라들과 정상회담을 가져왔지만 특별히 성과를 만들어낸 경우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때문에 8월 25일로 예정된 정상회담을 한미간에 모든 이슈를 다루고 일거에 해결하는 분기점으로 삼아 접근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일정 수준 만족시켜주는 이벤트를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양국간 회담의 지속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대응방안이 될 것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