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왜 한국에는 피그마가 없는가'라는 질문이 '블랙프라이데이' 질문보다 앞서야

2025-08-04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지난 1일 한국 증시는 8월이 시작되자마자 이례적인 폭락을 기록,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증시비관론이 비등하고 있지만 그 보다는 미국증시에 상장되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피그마'라는 기업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한가한 소리가 될 것인가.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250.0% 폭등한 피그마는 1일(현지시간)에도  5.6% 오른 122.00달러에 장을 마쳤다. 이로써 피그마의 기업 가치는 1일 기준 595억 달러(약 82조 6872억 원) 수준이다. 어도비가 2022년 피그마 인수를 시도했을 때 몸값인 200억 달러의 세 배에 가깝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시도를 독점강화로 보고 불허한 결과, 이제 미국은 물론 전세계는 보다 확장된 디자인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기술 독점과 창의성의 독점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규제당국의 판단이었다.

JP모건의 테크 IPO 담당자인 매튜 리(Matthew Lee)는 "시장에선 그동안 고평가된 스타트업의 상장 리스크를 우려했지만, 피그마는 그 우려를 완전히 뒤집은 사례"라고 평가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르네상스 캐피털의 매튜 케네디는 지금까지 IPO에서 5억 달러 이상을 모금한 회사가 IPO 가격의 3배로 주가를 마감한 회사는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그마는 지난해 매출이 약 7억4901만 달러로 전년 대비 48% 성장했으며 올 1분기에도 초고속성장이 이어져 2억282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6% 성장했다. 컨설팅 고객 중 연 연간반복매출(ARR) 10만 달러 이상 기업 수가 무려 1031곳에 달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피그마 공동 창업자 딜런 필드 / 사진=연합뉴스

◇어도비 이후 디자인의 미래는 피그마의 새판짜기에 좌우될 듯

어도비는 1982년 설립 이래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 디자인 소프트웨어 시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피그마의 부상으로 인해 위협을 받게 되면서 2022년 9월 피그마 인수를 시도했다. 200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규모는 당연히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UI(User Interface) 디자이너 사이에서 피그마 이용률은 2017년 11%였다가 2021년 이미 77%로 급등했기 때문에 어도비로서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 인수에 나선 것이다.  

어도비의 인수가 무산되면서 2024년 7월, 코아추(Coatue), 알케온(Alkeon), 제너럴 카탈리스트(General Catalyst) 등 투자자들이 피그마에 추가 투자하면서 기업 가치를 125억 달러(약 17조2000억 원)로 평가하기도 했지만 상장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완전 대박이었다.  

어도비의 인수 시도가 무산된 뒤, 피그마는 단순한 '디자인툴'이 아니라 '디자인을 둘러싼 방식'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피그마는 웹 기반 디자인 및 협업 플랫폼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실시간으로 디자인 작업과 피드백을 공유할 수 있는 혁신적인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지난 20년간 창작 툴 시장의 제왕이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디자이너의 손에는 늘 어도비의 제품이 있었다. 그러나 피그마는 그 질서를 바꿨다. 설치하지 않아도 되고, 실시간 협업이 가능하며, 디자이너와 개발자, 기획자가 같은 화면에서 대화할 수 있는 툴. 이것이 MZ 세대와 스타트업의 손에 들리면서 어도비의 벽에 균열이 생겼다.

어도비는 독창적 디자이너의 고독한 훈련반복을 연상시키는 반면에 피그마는 '함께 실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피그마의 창업주 딜란 필드(Dylan Field)는 1992년생으로 캘리포니아 페인그로브에서 성장했는데 수학에 능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대수학 공부를 시작할 정도로 뛰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TV 광고 배우로도 활동했다고 하는데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즉흥성과 상호작용'을 배우며, 이를 피그마의 협업 디자인 환경에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브라운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하면서 본격적인 IT인생이 시작되었다. 웹 기반의 그래픽 라이브러리(WebGL) 기술을 활용해 브라우저에서 실시간 그래픽 협업 환경을 구현한 것이 나중에 피그마의 핵심 경쟁력이 되는데 기존의 설치형 디자인 도구와의 차별화로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피그마는 단순한 '디자인툴'이 아니라 '디자인을 둘러싼 방식'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다 이같은 창업주의 성장배경 때문이다. 

피그마 CI / 사진=피그마

◇세계적인 기업들은 모두 20여년 사이에 성장, 한국은 장수기업 문화에만 집착

도대체 왜 한국에서는 피그마가 새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SaaS(Software-as-a-Service) 기반의 기업문화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즉 SaaS는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제공 방법인데 사용자는 인터넷을 통해 호환 장치에서 SaaS 애플리케이션에 로그인하고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피그마의 성공에서 확인할수 있는 것은 '기술의 민주화'다. 브라우저 하나로 전 세계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국내 디자인툴 시장은 여전히 패키지 중심, 기업용 중심, 그리고 폐쇄적인 생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기업환경이 혁신을 멀리하고 장수(長壽)을 칭송하는 일본식 기업문화에 너무 경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그런 문제에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토스랩, 두들린 등 초기 SaaS 생태계가 태동 중이지만 글로벌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는지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민간자본의 이동도 너무 대기업 위주이다. 새로움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국내에서 접해본 사실을 복기해보려고 해도 아득할 지경이다. 

반면에 세계 IT산업을 리드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공지능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픈 AI'는 2015년에 창업했고 그 유명한 테슬라 역시 본격적인 사업은 2004년쯤 되니 이제 겨우 20년이 된 회사다.   
2008년에 출범한 '에어비앤비'는 전세계 여행업계를 완전 장악하고 있고 틱톡 등으로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바이트댄스가 이 세상에 등장한 해는 2012년이다.
상업용, 소비자용 드론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중국의 DJI가 태어난 해는 2006년이니 이제 겨우 20살을 넘겼다.

이재명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주가 5000시대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는 내용의 세제개편안 등도 분명 작용할 수 있고 트럼프 행정부와의 힘겨운 관세전쟁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혁신이 사라진 국내 산업 환경이 주식시장에 가장 큰 장애 요인임을 부인할수 없다. 

우리 증시에도 피그마와 같은 혁신기업들 꾸준히 공급되었다면 주가는 5000이 아니라 이미 1만 돌파를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한 주가 5000시대를 열려면 상법개정안 등 법률적 대응과는 별도로 혁신기업을 키워내는 중장기적인 대응 프로그램을 갖춰가고 있는지, 그 문제에 대한 성찰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