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치+/⑲]"새로움을 갈망하라"
그녀에게 성역과 금기는 없었다. 그녀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더욱 파격적이고 창조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했다. 미국 팝 가수 마돈나(Madonna) 얘기다.
실제 팝 여가수의 구분은 마돈나가 데뷔한 1982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자체 뿐만 아니라 무대 매너, 의상, 가사, 뮤직 비디오 등 그녀의 모든 것은 그 이전과 달랐다. 그리고 이전에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마돈나는 전 세계적으로 4억장 가까운 음반을 판매해 세계에서 가장 성공을 거둔 팝 가수로 꼽힌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팝가수에 그치지 않는다. 2007년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3명 중 한명을 마돈나를 선정했다. 2006년에는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뮤지션에 72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마돈나가 오르기도 했다.
마돈나는 데뷔 초부터 단순한 팝가수가 아니었다. 그녀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새로운 문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전 세계인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마돈나가 성공을 거둔 것은 단순히 음악적 재능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 그녀는 가수 초기 간신히 기타를 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녀의 매니저였던 카밀 바본(Camile Barbonne)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마돈나는 데뷔 초기 음악적인 역량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간신히 곡을 쓰거나 기타를 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가사 쓰는 감각은 뛰어났고 무대 매너가 탁월했다"고 말했다.
사실 음악적 역량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았지만 마돈나는 팝 가수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 받는다. 그리고 그녀가 세계적인 팝스타로 가장 막대한 부를 거머진 성공한 음악가로 만든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갈망' 때문이었다.
그녀의 갈망에 대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유명한 뮤지컬 제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가 작사 작곡한 뮤지컬 '에비타'의 영화 버전에서 주인공을 맡았을 때다. 마돈나는 영화 촬영 직전 3개월 동안 노래 교습을 받아야 했다.
이미 세계적 팝 가수였던 마돈나에게 어쩌면 별도의 노래 교습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영화 스탭들도 마돈나에게 별도의 노래 교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마돈나는 겸손했다. 중요한 건 자신이 해보지 않은 뮤지컬 영화에서 주제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도전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로이드 웨버가 요구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춘 라이브 사운드트랙 녹음 요구에 응하기 위해 그녀는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부른 주제곡 '당신은 날 사랑하는 게 분명해요'(You Must Love Me)로 1997년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거머줬다.
이 상을 계기로 마돈나는 그냥 화려한 퍼포먼스의 팝가수에 진정한 실력파 여가수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여러 평론가들은 마돈나의 성공에 대해 '현대 여성의 꿈과 자각을 구현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실제 그녀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는 이미지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를 적대시하고 이성과의 애정을 거부하는 페미니스트와는 크게 달랐다.
그녀는 여성적이고 성적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강하면서도 자신만만한 강한 여성상을 구현했다.
마돈나에 대해 분석한 여러 언론과 자료들은 그녀에 대해 '해방가이자 투쟁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어떤 평론가는 저서에서 마돈나에 대해 "그녀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여자다. 무엇보다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널리 미치는지 주목받을만 하다"고 쓰기도 했다.
실제 마돈나는 활동하는 내내 여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섹시한 춤과 음악으로 인기를 얻으며 일부 언론에서는 그녀의 무명시절 누드모델 경력을 들먹이며 흠집내기도 했다. 뮤직 비디오에서 수녀의 의상으로 춤을 추는 장면에선 카톨릭교회 등의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캐나다 공연을 앞두고는 음란죄로 구속하겠다는 경찰의 경고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논란이 커질 수록 그녀의 행보는 더욱 강해지고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캐나다 공연 이후 나온 그녀의 누드 사진집은 1992년 10월 한정판 100만부가 발간되자마자 매진되기도 했다.
"난 늘 변신하고 발전하며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그리고 관습과 금기를 깨는데 열정을 다했다." 마돈나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마돈나는 지금도 뮤지션으로, 사회사업가로, 그리고 정치평론가로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일각의 반대의견과 비난에 맞써 스스로 트렌드를 창조한 인물로 꼽히는 마돈나는 지금도 새로운 문화 현상의 창조자로 많의 팬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배충현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