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삼성생명/①]계약자 돈으로 회사 키우고 배당은 '나 몰라라'
30년 전 "이익 나면 나눠드린다" 약속은 어디로
삼성그룹 계열사의 회계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기된 회계부정과 시세조종 혐의는 지난 17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삼성생명 회계 이슈는 다시 한 번 이 회장에게 '부정회계를 통한 경영권 유지'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논란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고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실질적 영향력이 있음에도 투명성 부족과 회계 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여기에 과거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은 문제까지 겹치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논란의 삼성생명' 시리즈를 통해 배경과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삼성생명이 지난 2월 보유 중이던 삼성전자 주식 425만여 주를 약 2337억원에 매각하면서 유배당 보험계약자들과의 갈등이 다시 불 붙고 있다. 회사 측은 "삼성전자의 3조원 규모 자사주 매입으로 삼성생명·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총 지분율이 금융산업법상 한도(10%)를 초과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발생한 막대한 처분이익을 계약자들과의 약속대로 돌려주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1990년 이전 유배당 보험상품에 가입한 계약자들이다. 이들이 납입한 보험료로 취득한 삼성전자 지분에서 생긴 이익의 배분이 쟁점이다. 당시 삼성생명은 "보험료를 투자해 수익이 나면 계약자들에게 배당금으로 돌려주겠다"며 유배당 상품을 적극 판매했고 실제 이 자금으로 삼성전자 주식 약 5444억원어치(주당 1072원, 취득원가 기준)를 매입했다. 이 지분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억390만4843주로 지난 22일 종가(6만5900원) 기준 33조2000억원에 달한다. 1990년대 저가 매입한 주식이 막대한 가치로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계약자 배당 수준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방식이 근본적인 문제로 지목된다. 회사는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지분을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측정(FVOCI) 금융자산으로 분류해 평가이익을 기타포괄손익(OCI)에 묻어두고, 이 중 일부만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부채 항목으로 계상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계약자지분조정 규모는 7조3000억원에 그쳤다. 이는 전체 OCI의 약 33%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사실상 지배주주 이익으로 귀속되는 구조다.
더 심각한 것은 삼성생명이 새 보험회계기준(K-IFRS17) 도입 이후 미래 배당금 추정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K-IFRS17에 따른 보험부채를 0원으로 계상했는데, 이는 유배당상품의 미래 배당금을 0원으로 추정했거나 적절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실제 배당 현황에서도 이런 문제는 드러난다. 2017~2020년 배당금은 전무했고, 최근 들어서도 배당 규모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2025년 기준 국내 주요 생명보험사 유배당 보험 평균 배당률이 약 3.8%인 상황에서 삼성생명의 배당 수준은 이에 크게 못 미친다.
유배당 보험계약자들의 불만은 오래 전부터 이어졌다. 2010년에는 가입자 2802명이 미지급 배당금 1억4000만원을 반환하라며 삼성생명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계약자들은 "삼성생명이 자산재평가로 얻은 2927억원의 차익 중 1173억원만 배당하고, 878억원은 자본잉여금으로 전입시킨 뒤 20년 넘도록 한 푼도 배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미숙 보험이용자협회 대표는 2022년 국회 토론회에서 "삼성전자 주식 처분이 늦어질수록 유배당 계약 해지로 인한 계약자 손해가 커지고 있다"며 "삼성전자 주식 처분시 5조6630억원의 배당 실현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지분의 회계처리 방식도 이런 배당 문제와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지분법을 적용해 관계사 이익을 손익계산서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매년 수천억원의 추가 이익이 발생하고 이는 유배당 계약자 배당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분법의 경우 평가이익과 과거 인식된 기타포괄손익누계액을 일정 기간 내 유배당 계약자 배당금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손익계산서에 인식된 이익뿐 아니라 기타포괄손익까지 포함한 배당금 산정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