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민생지원금 담은 20조 추경, '기본소득'으로 가는 마중물인가

2025-06-23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내가 꿈꾸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으로 혜택을 받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19살 때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수만달러를 지원받았다. 프로그램 참여자는 대부분 학생이었는데 나는 그 돈으로 스타트업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건 완벽한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내겐 기본소득으로 느껴졌고, 덕분에 스타트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 하면 떠오르는 이재명 대통령이나 기본소득당의 용혜인 의원의 말처럼 들리지만 오픈AI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지난해 10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월드코인의 전 세계 첫 공식 행사인 '어 뉴 월드'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올트먼만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회장이 지난 2017년 하버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축사 내용을 보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좌파들만의 전유물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저커버그는 축사에서 "가장 큰 성공은 실패할 자유를 얻는 데 있다. 실패해도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 하지만 불평등한 부의 수준에 따라 기회의 균등이 저해되고 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본소득'과 같은, 모든 이들에게 '쿠션'이 되어줄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첨단 기업 CEO들의 이같은 발언과 비슷하게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지사 시절부터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실업충격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여서 현존하는 경제 생태계와 체제를 존속시키는 장치이자, 구조화된 실업이 확실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유일한 대안이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등 세계적 기업 CEO들이 기본소득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이유"라고 주장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하지만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보수진영에서 집중 공격을 받은 기본소득 개념을 공약집에서 제외시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재명 대통령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포기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이 대통령은 기본소득은 물론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 '기본사회'이라는 개념에 자신의 정치철학을 결합시켜온 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이전인 지난 3월 올트먼의 주장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인공지능(AI)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 중 일부를 국가가 가지고 있으면서 투자로 인해 발생하는 생산성 일부를 국민 모두가 골고루 나눠가지면 세금을 굳이 안 걷어도 (된다)"고 말하고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면, 70%는 민간이 가지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대중에게 전달했다.   

이 대통령은 이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인공지능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독점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상당 부분 공유하는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겠다. 그게 내가 꿈꾸는 '기본사회'이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기본소득 실시지역 현황점검을 위해 방문한 경기도 연천군의 한 방앗간에서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는 이재명 정부의 인수위에 해당되는 국정기획위원회에 '농촌 주민수당' 내용을 보고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관심을 모을 만 하다.    

'농촌 주민수당'은 인구 감소세가 뚜렷한 농촌 주민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제도인데 우선 1단계로 내년부터 3년간 인구 감소가 뚜렷한 83개면에 사는 11만명에게 1인당 매달 15만원, 연간 180만원을 지원하고 이후 2단계로, 수급 대상을 194만명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내용은 소비쿠폰 10조원을 포함한 20조원 추가경정예산(추경)과는 별개이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철학인 '기본소득'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사회'는 그의 재임 기간 중 꺼지지 않은 이슈가 될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임에 분명하다.     

◇전국민 대상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기본소득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은 

정부는 지난 19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국민 1인당 15만~50만원씩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제공하는 추경안을 의결했다.

정부가 이번에 마련한 추경안을 보면 소득 상위 10%는 15만원, 일반 국민은 25만원, 차상위계층은 40만원, 기초생활수급자는 50만원을 받는다. 이때 84개 시·군 농어촌 인구소멸지역 주민에게는 2만원이 추가로 제공된다. 

때문에 전국민 보편지원이라는 '기본소득'의 개념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1회성 지급을 놓고 '기본소득' 운운하는 것은 무리한 논리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다. 

당초 민주당 정부는 기본소득과 유사한 보편 지급 방식을 추진했다. 하지만 당내에서도 선별지원과 보편지원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결국은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보편지원과 선별지원을 결합시키는 형태로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본소득은 어떤 개념일까? 

우선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BIEN, 1986년 벨기에서 창립한 비정부기구) 총회에서 정의한 기본소득의 다섯 가지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개인단위로 지급하는 개별성, 둘째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이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셋째 수급의 대가로 노동이나 구직활동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성, 넷째 소득을 한 번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기성, 마지막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현금 지급이다. 이런 원칙을 지켜야 그게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기본소득의 철학에서는 선별지원은 원칙을 훼손하는 방안에 다름 아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경제학자는 다름 아닌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그는 '기본소득'이 전통적인 복지 관료제보다 제도를 집행하고 유지하는 데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기본소득 개념으로 '마이너스 소득세'라는 것을 내세웠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소득이 일정 수준 밑이라면 정부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조금을 받는 것이다. 

그래픽=연합뉴스

마이너스 소득세는 기본소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수급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아예 더 멀리 나아가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책까지 뒤져보았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에게 안전한 생활수, 음식, 적당한 옷과 건강을 해하지 않는 생활 방식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연원이 아주 오래됐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250년 전 고전까지 찾아보게 된 것이다.

사실 기본소득은 2020년 21대 총선 과정에서 당시 야당이었던 미래통합당이 먼저 주장할 뻔 했다. 당시 김종인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은 집권 민주당이 코로나 지원금을 무차별 살포하자 아예 '기본소득' 이슈를 전면에 제기했다.

김종인 위원장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도 경기도지사 시절 여러 차례 '기본소득'을 강조했다. 이렇게 되자 미래통합당의 오세훈은 "기본소득이란 화두를 민주당이 먼저 가져가게 두면 안 된다"고 대놓고 걱정했다. 

프리드먼의 마이너스 소득세에 아이디어를 얻은 오세훈 서울시장은 '안심소득'이라는 개념을 내세웠는데 기본소득과 달리 안심소득은 한계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더 주고 고소득층에겐 아예 주지 않거나 덜 주자는 방안이다.  

유승민 전 의원도 오세훈 시장의 아이디어와 유사한 '공정소득'을 주장했었다. 유 전 의원은 민주당이 지난해 총선과정에서 전국민 25만원 특별지원법을 추진할 때 "이번엔 일회성 25만원이지만 이게 반복되면 기본소득이 되어가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자신이 주장하는) 공정소득은 소득이 일정액 이하인 국민에게 부족한 소득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이다.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공정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국가에 의한 현금지원이 꼭 민주당만의 전매특허는 아님을 알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시절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을 맡았던 홍장표는 예전에 기자와 만난 사석에서 "김종인 위원장이 기본소득을 처음 내세울 때 내심 긴장했다"고 말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와 진보진영의 어젠다를 선점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김종인의 아이디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처럼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생각하기 어려운 점은 사실이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고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있다. 

◇이재명 정부 '소버린 AI' 육성으로 '기본사회' 추진동력 확보하려면 3차 추경 가능성도

정부는 이번 추경안을 짜면서 10조3000억원 규모의 세입경정을 결정했다. 국세수입 예산안이 기존 382조4000억원에서 372조1000억원으로 감액 수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입감액 경정은 2020년 이후로 5년 만인데 그만큼 세수결손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돈을 버는 기업들이나 개인들이 수입이 줄어들어 세수는 부족해지고 지출은 많아지니 일단은 정부가 빚을 내어 틀어막자는 것이다. 

2023년(56조4000억원)과 2024년(30조8000억원) 같은 대규모 '세수펑크'까지는 아니지만, 올해도 10조원 남짓 세수결손이 예상된다고 한다. 기업활동이 부진하니 법인세에서 4조7000억원의 세수가 줄어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경제활동이 위축되는 바람에 부가가치세 수입도 4조3000억원이나 펑크가 예상된다. 

추경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국채발행은 불가피한데 이에 따라 중앙정부 채무와 지방정부 채무를 포괄한 국가채무는 1300조6000억원으로 늘어난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9.0%로 과반에 근접하게 됐다. 작년과 비교하면 1년 새 1.6%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그래픽=연합뉴스

이처럼 국가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기본사회' 구현은 고사하고 국가신용도 하락이 불가피해진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주가지수 5000 시대'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결국 성장을 통해 경제파이를 키워야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결국 민생지원금이든 기본소득이든 재원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지속가능한 재원확보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아무리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도 적자국채를 무한정 발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있는 부(富)'를 나눠 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기본사회'를 이끌어가는 추동력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이재명 대통령은 AI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AI 기업과 간담회에서 "'챗GPT 있는데 소버린 AI(국가주권형 인공지능)를 왜 개발하는가. 낭비다' 이런 이야기는 '베트남에 쌀 생산이 많이 되는데 뭘 농사를 짓는가. 사 먹으면 되지'라는 이야기와 똑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 강조한 소버린 AI 개발의 필요성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AI 핵심 자산인 GPU(그래픽처리장치)를 최소 5만개 이상 확보하고, AI 전용 NPU(신경망처리장치) 개발과 실증을 적극 지원해 기술 주권을 확보하겠다.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을 위한 공공 데이터도 민간에 적극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고급사양인 H100~H200급 GPU의 경우 대당 가격이 5000만~6000만원을 호가한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GPU 5만개는 막대한 수치로 보이기는 하지만 최근 일론 머스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의 AI 기업인 xAI가 앞으로 10만대 이상의 GPU를 확보하겠다고 주장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머스크는 "인류는 지능의 빅뱅(Intelligence Big Bang) 초기 단계에 있다. 이르면 올해 안에, 늦어도 내년에는 인간의 지능을 모든 측면에서 초월하는 디지털 초지능(Digital Superintelligence)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단언하면서 바로  지금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AI산업 육성에는 민생지원금 이상의 천문학적인 재원이 필요함도 분명하기 때문에 '선 성장후 분배'와 '선 분배에 기반한 성장' 사이의 갈등구조가 생기면서 정권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한 노선투쟁은 불가피해질 것이다.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때마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폭격결정 등 중동전쟁 분위기도 예사롭지 않아 AI산업 육성 지원금이 포함된 3차 추경 논의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