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노소영 일가 비자금 수사, 최태원 SK 회장과의 '세기의 이혼소송'에 변수로 작용하나

2025-05-19     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지난해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무려 1조3808억원의 재산 분할 판결로 큰 화제를 모았는데 그 후유증이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로 확대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에 따라 검찰이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까지 나서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전두환·노태우 추징금에 대해 시효를 배제하고 반드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5·18 45주년 기념식에서 "국가폭력과 군사쿠데타, 국민에 대한 국가권력의 상실 행위 또는 시도에 대해서는 시효를 배제하고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서 "민사상 소멸시효도 배재해 상속재산 범위 안이라면 그가 사망했더라도 상속자들한테 민사상 배상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5·18기념재단은 지난 9일 "(전두환, 노태우 등 광주항쟁 책임자들의) 불법 은닉된 재산이 후손에게 이전되는 것을 방관한다면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짓밟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노 관장은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 비자금이 SK그룹을 위해 사용됐다"고 주장하고 어머니 김옥숙 여사가 '선경(SK그룹의 옛 이름) 300억'이라 기재한 메모와 50억원짜리 어음 6장의 사진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이를 이혼소송 2심 재판부가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인정한 바 있다.  

때문에 검찰은 자연스럽게 증거를 제출한 김 여사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아들 노재헌씨가 이사장으로 있던 동아시아문화센터에 147억원을 출연한 부분 역시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관장 측이 이혼소송에서 증거로 제시한 300억원은 물론이고 147억원 출연금 역시 노 전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비자금 중 일부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의 해묵은 비자금 문제를 넘어서 조 단위를 넘긴 이혼소송의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 사진=연합뉴스

◇SK그룹 성장사는 곧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때문이라는 결론의 모순은  

항소심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를 근거로 SK그룹 측에 비자금이 흘러갔으며 이를 종잣돈으로 6공화국의 특혜까지 더해 SK그룹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결론을 냈다. 

결국 노태우 일가의 비자금 300억원이 노소영 관장 몫의 재산분할 금액 1조3808억원으로 이어졌다.  

물론 2심 재판부는 노소영 일가가 최태원 회장에게 제공한 300억원이 흔히 말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조성한 통치자금이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아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에 유입되었다면 그것 자체가 불법이고, 때문에 노소영 관장이 그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불법이라는 비판이 나올 것을 미리 예견(?)한 것인지 재판부는 친절하게도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1991년도 기준으로 볼 때 300억원이 (분할 대상에 포함시킬 수 없을 만큼의) 불법적인 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이 300억원은 노 전 대통령의 앞선 형사 재판에서 인정된 비자금과는 별개의 돈일수 있다는 설명이다. 

2심 재판부가 증거로 채택한 김옥숙 여사의 메모에는 현금성 자산 218억5000만원을 포함해 900억원대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 보관처 등이 정리되어 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비자금 확인 및 환수 과정에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내용이기 때문에 2심 재판부는 불법자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인데 시중의 의구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노 관장 측은 증거자료를 제시하면서 1991년 즈음 최 회장 측에 300억원이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면서 신고한 재산은 5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중 조성한 통치자금과는 별도로 4~5년 만에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냈다고 판단한 재판부의 판결에 고개가 갸웃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재판 과정에서 최 회장 측은 노소영 일가의 300억원이 최 회장 측에 들어 온 것 자체를 부인했었고 대법원 상고 이유서에도 "세부 내용 없이 단순히 비자금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막연히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혜 여부에 대해 SK 측은 "6공 시기 특혜는 없었고, 오히려 마이너스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2심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을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설정해 최종현 선대회장 시절보다 훨씬 고성장을 이뤄냈다고 평가했고 그만큼 노소영 원장의 기여도가 커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재판부가 SK㈜의 모태가 되는 대한텔레콤(현 SK C&C)의 주식가치 산정에 중대한 오류를 범한 사실을 이미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 판결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 SK그룹 회장 생존시 SK C&C의 가치가 125배 급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12.5배 성장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선대회장 사후부터 2009년까지 35.5배 성장했음에도 355배로 급성장한 것으로 잘못 보았다는 것이 최 회장 측 주장이다. 최태원 회장의 재산에 선친의 기여도가 거의 인정되지 않았다는 반론이었다. 

2심 재판부는 최 회장 선친은 재산형성에 미미한 기여를 했을 뿐이고 노소영 일가의 비자금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과 관련해 2022년에 열린 1심에서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로 665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1심에서 300억원 비자금 메모는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어쨌든 2심 재판부가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을 특유재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노소영 일가가 대부분 지원한 금액이라고 판결을 내린 점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1심은 "SK㈜ 주식은 최 회장 부친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 물려받은 특유재산"이란 최 회장 주장을 받아들였다. 특유재산은 결혼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 등으로, 보통은 이혼시 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2심 재판부의 판결은 또 하나 이상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수 십년간 SK 그룹에서 일해온, 말 그대로 수십만명의 임직원들이 이뤄낸 성과는 오로지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 때문에 가능했다는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노태우 집안의 300억원 비자금을 종잣돈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거대 기업의 지분을 '재산 형성 기여'라는 이유로 노 관장이 모두 가져가는 게 맞냐는 의문 제기 역시 당연히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최고 60%를 육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율을 인정하는데 노 관장은 부친이 300억원을 SK에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조 단위의 현금을 쥐게 된다. 아무런 상속세도 없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운위되어왔던 노 전대통령의 통치자금 5000억원의 2배를 넘기는 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통치자금'이라는 단어의 기괴한 모습

1995년 8월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문민정부에서 총무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서석재는 출입기자들과 저녁 자리를 하면서 비보도를 전제로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이 4000억원대의 비자금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말을 했다.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내용을 굳이 술자리에서 그것도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토로한 당시 서석재 장관의 속내는 알수가 없다.   

서석재 장관은 저녁 자리가 끝날 때쯤 모 신문의 출입기자를 보면서 "아무래도 당신이 오프더레코드를 깰 것 같은데 그러면 안되요. 소문일 뿐이야"라고 어깨를 치면서 웃었다고 한다. 뭔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면서...

서석재 장관의 예지력(?)이 통한 것인가. 서 장관이 지목했던 바로 그 기자가 '전직 대통령 거액 차명계좌설'을 신문 톱으로 기사를 썼다.

보도 이후 한바탕 법석이 전개된 뒤 1995년 10월 19일 국회 본회의장 대정부질의 시간에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4000억원을 이원조씨가 시중 은행에 분산 예치했다고 증거까지 제시하면서 폭로했다.

노태우의 비자금 사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1995년 10월 27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같은해 10월 2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5년간 5000억원가량의 통치자금을 조성했다"고 실토했다.

여기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 말은 바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용한 '통치자금'이라는 용어였다.

그런데 그 '통치자금'이 SK그룹 성장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니 조 단위의 보상금을 바로 그 통치자금을 조성한 노 전 대통령의 딸에게 환수(?)하라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1월 구속이 되었는데 1997년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은 후 2379억원이 국고로 환수됐고, 16년 만인 2013년 미납 추징금 230억원을 마저 내면서 마무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노 전 대통령의 딸은 불법적으로 조성한 통치자금 5000억원의 두배가 넘는 1조3808억원을 받게 된 것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1995년 10월 28일자 조선일보 1면 지면(紙面)을 보자. 

톱기사 제목은 <비자금 5000억 조성, 노 전 대통령 대국민 사과, 쓰고 남은 돈 1700억>이다.
두 번째 기사 제목은 <김대중씨 92년 20억 받았다. 노 전대통령이 대선때 '위로' 명목으로 건네>이고, 세 번째 기사 제목은 <김종필씨 계좌 100억 입금, 박계동의원 동화은 비자금 수사때 확인>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용한 통치자금 용처가 몇 개 나오는데 정치자금 용도로 쓰여진 시기가 대충 92년 즈음이다. 

그런데 2심 재판부가 같은 기간인 91~92년 즈음에 노태우 일가에서 최태원 회장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한 300억원만이 불법적인 통치자금과는 별도의 돈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통치자금을 실토할 때도 1700억원을 쓰지 못하고 남겨놓았다고 했었다. 

아무튼 30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면 이혼 판결 이후 SK 그룹의 처지에서 아이러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당시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국제경쟁력을 이기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는 기업인들의 의욕을 꺽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게 간절한 마지막 소망입니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