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토크+/⑲]'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지목받는 유상증자(Ⅱ)
대기업 상장사들이 최근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면서 투자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국내 증시에 밸류업 분위기를 타고 겨우 상승 흐름을 보였는데, 상장사들이 기습 유상증자를 하면서 기존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 주주들의 입장이다. 대기업 상장사들의 이같은 행태가 증시 밸류업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삼성SDI 등 대기업 상장사들이 최근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이번 유상증자 규모는 무려 3조6000억원으로 국내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 21일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화그룹 주가는 일제히 급락했다. 단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6조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지난 14일에는 삼성SDI가 시설투자 자금 확충용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하면서, 당일 주가가 6.18% 급락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 30일에는 영풍‧MBK파트너스와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이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기습 결정하면서 고려아연 주가가 관련 공시 직후 하한가로 급락하기도 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한 끝에 유상증자 계획은 철회됐다.
그러나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삼성SDI의 경우, 금감원은 중점심사하겠다고 예고하다가 결과도 나오기 전에 돌연 '긍정적' 입장으로 선회한 상태다. 기업의 적극적 투자 활동을 위한 자금 조달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그럼 기업에서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는데,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투자 심리를 급속히 냉각시키는 유상증자란 무엇이고 왜 비판받을까? (참고: [머니토크+/⑨]금융당국 긴장시키는 유상증자란)
◇유상증자란
유상증자란 기업이 주식을 신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5억원의 자본금을 추가로 확보하려면 액면가 5000원의 주식 10만주를 더 발행하면 되고, 이때 새로 발행된 주식은 신주가 된다.
기업인 신주를 투자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확보한 현금은 설비 투자, 연구개발(R&D), 부채 상환, 운영자금 마련 등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유상증자의 유형은 기존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하는 주주배정 방식과 기존 주주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를 대상으로 신주 인수 권리를 주는 일반공모 방식, 기관‧전략적투자자 등 특정 투자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제3자 배정 방식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유상증자는 기업은 자본금을 직접 증가시키는 도구가 된다. 기업이 주식을 추가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므로 자금이 기업에 직접 유입된다.
반면에 주식시장 내 기존 주식 거래는 기업의 자금과는 무관하다. 기존 주식 매매는 투자자들 간의 거래일 뿐, 기업에 새로운 자금을 유입시키진 않기 때문이다.
기존 주주가 신주를 매입하면 지분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신주를 사지 않으면 지분율이 희석된다.
◇유상증자의 장단점
유상증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채 없이 자본을 확충할 수 있으므로 재무 건전성 개선을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으므로 기업의 성장 기회를 마련한다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반면에 신주 발행으로 주당 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은 단점이다. 기존 주주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으로 지분율이 낮아지는 점도 부정적이다. 특히 시장이 예상치 못한 대규모 증자는 단기적으로 주가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유상증자를 자주 하게 되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될 여지가 높다.
특히 유상증자 목적이 부채 상환이나 운영자금 충당이라면 시장에서는 기업의 재무 상황이 급박하다고 인식하게 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삼성SDI 유증 비판받는 이유는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를 놓고 논란이 거센 까닭은, 타이밍 상의 문제가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가 역대 최고가(장중 78만원)를 쓴 지난 18일 직후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주는 주주배정 유상증자 방식을 발표함으로써 주주들의 부담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회사 측은 어려운 업황 속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올해 예상 연결 영업이익 규모나 향후 이익 개선세를 감안할 때 유상증자 외에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올해 예상 연결 영업이익이 3조5000억원으로 이번 유상증자 규모에 맞먹는 것에 대해, 기업이 수익을 내곤 있지만 현금 유동성이 좋지 않거나 급한 자금이 필요해 재무 상황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눈초리를 자아낸다.
증권가에서는 "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데 굳이 유증을 이렇게 큰 규모로 했어야 하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무보증사채 등급을 'A+(안정적)'으로 평가한 상황에서, 양호한 신용등급을 가졌는데도 굳이 유상증자 방식을 택한 것에 대해 물음표가 찍혔다. 신용도가 낮아 금융권 대출이 어렵다면야 유상증자 외에 선택지가 없을 수 있겠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렇지 않다는 시각이다.
무분별하고 일방적인 유상증자는 다수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질적 폐해라고 일반 투자자들은 입을 모은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