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쿠팡①]이커머스 본보기 된 쿠팡…고객감동 '피벗' 통했다

2025-03-19     최연성 기자

쿠팡이 지난해 연매출 40조원 돌파(41조2901억원·302억6800만달러)라는 신기록을 썼다. 2010년 설립 이후 불과 14년 만에 유통업계 터줏대감인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연간 판매액(각각 40조6595억원, 37조1778억원)을 모두 앞질렀다. 쿠팡의 급성장 엔진으로 꼽히는 '로켓배송'과 '와우 멤버십' 같은 서비스는 이커머스(전자상거래)시장의 본보기로 자리매김했다. 시장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로켓 파워'를 입증한 쿠팡의 성공 스토리와 미래 전략을 4회(①이커머스 본보기 된 쿠팡 ②'로켓배송' 그 이상 ③이 회사가 사는 법 ④김범석 의장의 '전인미답')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주]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CEO(최고경영자) 겸 이사회 의장 / 사진=쿠팡

쿠팡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CEO(최고경영자) 겸 이사회 의장이 서울에 처음 회사를 차린 건 2010년의 일이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경영대학원을 반 년 만에 그만둔 뒤였다. 그는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영향력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엔 시간이 정말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김 의장은 정보기술(IT)의 발전과 더불어 커지고 있는 기회를 잡고 싶었다. 

◇그루폰에서 이베이, 아마존으로…'피벗' 통했다

쿠팡은 흔히 '한국의 아마존'으로 불리지만, 김 의장이 처음부터 사업모델로 아마존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지금의 쿠팡은 그가 명민한 결단으로 이룬 '피벗'(pivot·중심축 전환)의 산물이다.

초창기의 쿠팡은 그루폰(Groupon)을 모델로 삼았다. 쿠팡이라는 회사 이름도 '그룹'(group)과 '쿠폰'(coupon)의 합성어인 그루폰과 무관하지 않다. 쿠팡은 '쿠폰'과 '팡'을 합친 말이다. '쿠폰으로 대박을 친다'는 정도의 의미다.

2008년 미국에서 탄생한 그루폰은 소셜커머스의 원조로 통한다. 소비자들을 모아 공동구매 방식으로 할인율을 높여주는 플랫폼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잡지나 신문 등에 들어 있던 할인쿠폰을 앱으로 옮겨온 셈이다. 그러나 그루폰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커머스시장이 급성장하면서다.

김 의장은 시장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엔 당시 이커머스시장 선두주자였던 이베이(eBay)에서 영감을 얻어 쿠팡을 제3자 마켓플레이스로 전환했다. 2012년부터 소비자에게 직접 상품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에는 배송시장에도 진출했다. 

사진=쿠팡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3년 만에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면서 주변에서 기업공개(IPO)에 대한 기대감이 돌았다. 실제로 쿠팡은 당시 IPO 문턱까지 갔지만, 김 의장은 마지막 순간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는 훗날 6개월에 걸쳐 추진한 상장을 막판에 포기한 것을 두고 "가장 어려웠지만, 가장 자랑스러운 선택이었다"고 떠올렸다.

김 의장은 "'우리가 사랑하는 고객들의 입이 딱 벌어질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을까'라고 물어봐야 했다"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IPO를 중단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를 일단 상장하고 나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방향을 바꾸기 훨씬 어렵다고 했다.

김 의장은 "우리가 고객들에게 정말 중요한 무언가, 100배 더 나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나은 것을 제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엄청한 변화를 겪어야 했다"며 "우리는 전체 기술스택(technology stack), 사업방식, 사업모델을 바꿔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의장은 IPO 계획을 접은 뒤 전면적인 사업 재편에 나섰다. 상품 주문부터 집 문앞 배송까지 모든 고객 여정을 아우르는 종단간(end to end) 쇼핑 플랫폼으로 변신하는 게 목표였다. 아마존이 그 모델이었다.


◇神은 디테일에 있다…전국이 '쿠세권'

쿠팡의 성장은 한국 이커머스시장의 급성장과 맞물려 있다. 타이밍이 절묘했던 셈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지난해 약 259조4413억원을 기록했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4년 45조2440억원에 비하면 10년 새 6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자료=통계청

그도 그럴 게 한국은 이커머스시장이 성장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토양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도시화율이 높고,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에 집중돼 있다. 웬만한 가정에는 초고속인터넷이 깔려 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하루를 보낸다. 근무시간도 중국의 '996 문화'(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 뺨칠 정도로 길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을 집으로 배송해주는 이커머스 사업에 제격이다.

문제는 당시 시장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는 점이다. G마켓, 11번가, 옥션, 인터파크, 네이버쇼핑 등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이미 같은 토양에서 점유율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매출도 가파르게 늘었지만, 소모전 속에 시장은 과밀해졌고 수익을 내기가 여의치 않았다.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 이커머스 기업들은 저가 공세로 고객들을 유인해야 했기 때문에 쿠폰을 남발해 손실을 키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쿠팡은 2019년 한국 소비자원 설문조사에서 경쟁사들을 제치고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온라인쇼핑 플랫폼으로 등극했다. 심지어 당시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쿠팡이 아마존보다 낫다"는 평가도 들렸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미국 실리콘밸리를 주무대로 삼는 벤처캐피털 세콰이어캐피털 등이 쿠팡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배경이다.

급기야 쿠팡은 2021년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데뷔하며 거래 첫날 마감가 기준 약 880억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뉴욕증시에서는 2014년 중국 알리바바 이후 최대 규모의 외국 기업 IPO 기록이다.

2021년 3월 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김범석 쿠팡Inc CEO(최고경영자) 겸 이사회 의장(왼쪽 세번째)이 경영진들과 함께 쿠팡의 상장을 기념해 오프닝벨을 울리고 있다./ 사진=쿠팡

김 의장은 '디테일의 수준'이 극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쿠팡의 사업을 차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짚었다. 그가 말한 디테일의 수준은 한국 시장 특성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대응하느냐를 뜻한다.

쿠팡은 고객들이 도시에 몰려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전국 30개 도시에 100여개의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촘촘한 자체 배송 시스템 덕분에 2014년부터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24시간 안에 배달해주는 '로켓배송'을 시작할 수 있었다. 로켓배송은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 이전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로 진화해 업계에 '배송전쟁'을 일으켰다. 

한국인의 약 70%가 쿠팡 물류센터 반경 10㎞ 안팎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쿠팡은 '쿠세권'(쿠팡 로켓배송 가능지역)을 전국적으로 더 확대할 태세다.


'저주'가 '축복'으로…쿠팡이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이유

김 의장은 쿠팡이 고객 여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하게 책임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통합하는 기술을 구축하는 것이 처음에는 '저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 쿠팡은 2023년 처음 연간 흑자(6174억원)를 기록하기까지 6조원이 넘는 적자를 쌓아올렸다. 물류센터 구축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부은 탓이다. 지난해에는 흑자 폭이 6023억원으로 소폭 줄었는데도 오는 2026년까지 3조원을 더 투입해 물류센터를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쿠팡이 일각에서 우려하는 대규모 투자에 이처럼 자신감을 보이는 건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당장 이익을 내기보다 투자를 지속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면 그 과정에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에게 쿠팡의 적자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한 '계획 적자'였던 셈이다. 

김 의장은 저주처럼 느껴졌던 인프라 투자가 결국 엄청난 축복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경쟁사들이 쿠팡을 따라 잡으려면 물류·기술 인프라에 수조원을 투자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의장은 또 한국과 같은 선진시장에서는 시장의 리더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두자리를 더 확고히 다지는 경향이 있다고 짚었다. 

쿠팡은 지난해 3월 오는 2026년까지 3년간 3조원 이상을 투자, 2027년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무료 로켓배송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인포그래픽=쿠팡

쿠팡은 소프트뱅크와 같은 투자 큰손들의 든든한 지원과 김 의장의 대담한 추진력으로 일군 강력한 인프라로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리고, 쿠팡이츠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었다. 

쿠팡은 자사 고용 사이트에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 회사의 존재 이유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고객들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해줄 때라야 비로소 회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이 혁신을 거듭해온 쿠팡의 '피벗' 고비마다 했던 고민도 결국 '와우(wow) 포인트'였다. 그는 고객들에게 얼마나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쿠팡의 변신을 이끌었다. 김 의장은 고객들이 입을 벌리고 놀랄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자본조달에 유리한 입장에서 공격적인 재투자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쿠팡의 고객 감동 혁신에 소비자들도 호응하고 있다. 쿠팡이 2018년 선보인 유로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가입자는 2020년 600만명에서 2023년 말 기준 1400만명을 넘어섰다. 연평균 약 30%씩 늘었다. 지난해 단행한 와우 멤버십 요금 인상에 따른 고객 이탈 우려는 기우에 그쳤고, 활성고객수(분기에 1회 이상 구매한 고객)는 2280만명으로 오히려 10% 늘었다. 우리나라 국민 절반가량이 쿠팡을 사용한 셈이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