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25+]'창업주 일가 vs 사모펀드' 고려아연 분쟁, 23일 임시주총서 향방 결정
한국 기업의 새로운 변곡점 보여줘 집중투표제 도입 정관 변경두고 첨예한 대립
최근 산업계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기업은 단연 고려아연이다. 장형진 영풍 고문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분쟁 속에 한때 주가가 장중 240만7000원까지 뛰어 현대차를 제치고 시총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지분 매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고려아연 사태는 국가 기간산업과 미래 신산업의 충돌, 창업주 일가와 사모펀드의 대결이라는 상징성은 한국 기업의 새로운 변곡점을 보여줬다.
1949년 황해도 출신 실향민 최기호·장병희 두 창업주의 동업으로 시작된 영풍기업사는 제련산업의 신화였다. 1974년 설립된 고려아연은 1988년 한국 최초로 런던금속거래소(LME)에 아연 브랜드를 등록했고, 세계 최대 아연제련기업으로 성장했다. 양가는 계열사 분리 경영과 상호 주식 보유로 안정적 관계를 유지했다.
변화는 최윤범 회장 취임과 함께 시작됐다. 2022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미래 성장 전략을 본격화했다. 신재생에너지, 2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사업을 통해 비철금속 산업의 혁신을 이끌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호주 재생에너지 업체 에퓨론, 미국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 순천 제강분진 재활용업체 GSDK 등을 인수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힘을 보탰다. 수소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한화가, 2차전지 분야에서는 LG가, 리사이클링 분야에서는 현대차가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했다. 2023년 이들 기업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자사주 교환을 통해 우호지분도 확대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투자로 늘어난 차입금이 영풍의 우려를 샀고, 지난해 초 고려아연이 신사업 투자를 이유로 배당금을 줄이기로 하면서 두 집안의 갈등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려아연 최대주주였던 영풍에게 고려아연 배당금은 주요 재원 중 하나다. 당시 영풍은 주주가치 제고를 이유로 배당확대를 요구하며 고려아연 측과 주주총회 표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영풍이 고려아연과 HMG글로벌을 상대로 제3자 유상증자 취소 소송을 제기하며 두 집안 간 갈등은 소송전으로 비화했다. 고려아연은 '동업의 상징'이었던 서린상사 경영권 확보, 영풍과의 '황산취급 대행' 계약 종료 등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영풍 오너가 3세 장세환 전 서린상사 대표가 밀려나며 갈등이 격화됐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다 9월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영풍이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주당 66만원에 고려아연 지분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다. 고려아연은 즉각 2차전지 전구체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신청하는 한편, 주당 83만원에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며 맞섰다. 당시 공개매수가는 89만원까지 상향됐다.
여론전도 뜨거웠다. 고려아연은 경영권이 영풍·MBK 측에 넘어갈 경우 신사업 동력이 상실되고, 국가기간 산업이 중국 등 해외자본에 유출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영풍·MBK는 최 회장의 무분별한 투자를 문제삼으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공개매수 종료 후에도 양측의 지분매입 경쟁이 이어졌고, 고려아연 주가는 한 때 240만원을 돌파했다. 지분매입 경쟁은 영풍·MBK가 40.97%, 최 회장 측이 우호지분 포함 34% 수준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열세에 놓인 최 회장 측은 지분율 희석 등을 목적으로 2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발을 샀고, 금융당국도 제동을 걸면서 결국 철회됐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오는 23일 열릴 고려아연 임시주총은 이번 분쟁의 향방을 결정할 전망이다. 지분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영풍·MBK는 이사 14명 추가 선임을 통해 이사회 장악을 노린다. 이에 맞서 고려아연은 이사 수를 최대 19명으로 제한하고,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정관 변경을 제안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임 시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재 13명으로 구성된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장형진 고문을 제외한 12명이 최 회장 측 인사라는 점에서, 이사 수 제한과 집중투표제가 결합하면 영풍·MBK 연합의 이사회 장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사실상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연금(지분율 7.48%, 9월말 기준)의 선택도 주목된다.
업계 관계자는 "임시주총 직전까지 양측의 치열한 수 싸움이 펼쳐질 것"이라며 "고려아연과 MBK측이 임시주총에서 승리하기 위해 한동안 바쁘게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