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25+]美 '규제'·中 '추격'…반도체 "2025년 더 힘들다"

SK하이닉스, HBM 우위 앞세워 약진 삼성전자, 엔디비아 문턱 통과 과제

2024-12-31     박성대 기자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반도체 산업에서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반도체 산업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국내 반도체 산업은 AI 훈풍으로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생산하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수혜를 입었다.

HBM에 대한 수요는 2025년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보이나, 기술 우위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지 않으면 언제든 위기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산업은 오픈AI의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AI 경쟁으로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국내 업계가 호황을 맞았다.

특히 AI 반도체의 핵심부품인 HBM은 매출이 급증했다. AI 가속기 시장에서 독보적인 업체가 된 엔비디아는 HBM 물량 확보에 나서면서 HBM이 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다. 현재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HBM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미국의 마이크론이 이를 뒤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엔비디아의 제1 HBM 공급사로 5세대 HBM(HBM3E) 8단 및 12단 물량의 대부분을 납품하고 있다. 이에 SK하이닉스가 사상 처음으로 삼성 반도체를 제치고 연간 영업이익 1위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7조3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면서 기술경쟁력에서 뒤처지면서 SK하이닉스에 비해 HBM 수요 증가의 이득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 전망치가 8조481억원인 반면, 삼성전자 DS(디바이스 솔루션)부문은 이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AI 제품 중심의 반도체 시장 성장 흐름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HBM 시장은 2022년 27억달러에서 2029년 377억달러로 연평균 46%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경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25년까지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우위를 지키겠지만 2026년 이후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중국 메모리 업체의 저가 물량 확대로 레거시(범용) 메모리 시황이 악화하고 있어 HBM에 대한 우위를 지키는 것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산 저가 D램의 유입으로 메모리 가격은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특히 중국이 쏟아내고 있는 PC용 DDR4는 2025년 1분기 10~15% 하락이 예상된다. 올해 4분기 8~13%의 가격하락을 보인 것보다 더 가파르게 떨어진다. 

마이크론도 2025 회계연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기업의 범용 물량 확대 등으로 범용 D램과 낸드 시장의 이익이 줄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HBM의 견조한 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창신메모리는 DDR5 생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CXMT가 고부가 제품으로 평가 받는 DDR5까지 출시하면서 중국 업체들이 범용 반도체뿐 아니라 최신 공정 반도체 시장도 위협하고 있다. 성능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지만 중국 내수 시장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마이크론도 최근 한국의 반도체 인재를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로 엔비디아에 HBM3E 8단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2년 내에 HBM4(6세대) 제품 양산도 2년 내 이루겠다는  게 마이크론의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도 HBM에서는 선두지만 꾸준하게 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따라 잡힐 수 있다"면서 "마이크론이나 창신메모리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어서 위협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시장은 TSMC의 독주가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TSMC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공정에서 높은 수율(양품비율)과 신뢰성을 앞세워 주요 빅테크 수주를 독차지하면서 2위인 삼성전자 파운드리와의 격차가 벌어졌다. 올해 3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64.9%의 점유율로 1위를 유지했다. 2위인 삼성전자는 시장점유율이 한자릿수인 9.3%로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용화 예정인 2나노에서 TSMC와 경쟁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도 2나노 공정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는 것도 변수 중 하나다. 반도체법(Chips Act)에 대한 개정 가능성을 보이는 것과 함께 대중 반도체 규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반도체법에 발맞춰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각각 4억5800만달러(약 6634억원), 47억4500만달러(약 6조9000억원)의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와 제대로 지급이 진행될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전면 백지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지급과 관련된 조건을 까다롭게 해 보조금 규모를 축소하는 등 다른 조치에 대한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2기에서 대중 반도체 규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앞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지난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통해 공급망 재편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따라 미국산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통제 조치로 중국 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공장 가동 중단까지 우려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에 대해 이를 무기한 유예하면서 장비 반입이 가능해졌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중국 견제에 동참 요구가 커질 경우 유예는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에서 이달 착수한 중국 범용 반도체에 대한 불공정 무역 조사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나오게 되는 것도 주목된다. 이를 빌미로 중국 범용 반도체 수입은 물론 중국산 반도체가 들어간 제품까지 규제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협상이 중요하지만, 한국은 비상계엄 사태로 이어진 국내 정치 혼란 상황으로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무역으로 먹고사는 게 반도체, 자동차인데 둘 다 트럼프 당선인이 때리겠다는 분야"라며 "통상이나 외교 측면에서 주고받는 좋은 딜을 해야 하는데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정책을 만들고 나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