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K이노‧SK E&S 합병에 반대하는 국민연금
서스틴베스트 '반대' 권고 이어 국민연금 수탁위 '반대' 결정 SK이노 가치 시가기준 책정…"일반주주들에게 불리" 10분기 연속 적자 SK온 살리기에 합병 활용 전략 국민연금,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시 SK그룹 개편에 '변수'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계약 체결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국민연금은 일단 반대 쪽의 손을 들어줬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비율을 놓고 SK이노베이션의 가치를 낮은 시가기준으로 책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국민연금 역시 '주주가치 훼손' 측면에 우려를 표했다.
대기업 계열사 간 합병 등에서 일반주주의 이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는 전형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손꼽힌다. 기업 밸류업 정책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국민연금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관점을 고려하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됐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지난 22일 회의를 열고 오는 27일 SK이노베이션 임시 주주총회에서 다룰 합병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고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수탁위는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이유를 들었다.
앞서 21일 국내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다며 기관투자자들에게 합병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엄밀히 보자면 양사의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을 따르고 있어 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 다만 이사회 결의일 기준으로 SK이노베이션의 PER(주가순자산비율)이 0.36으로 역사적 저점에 있는데다 동종업계 PBR(주가순자산비율)을 크게 밑도는 수준에서 합병가액이 산정돼 회사의 주식가치를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 측은 SK E&S의 상대적 합병 가치를 고려할 때 시가 적용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스틴베스트 측은 "합병 비율 측면에서 분명 자산가치 적용이 유리하며 최선인데도 불구하고 시가 적용을 최선의 선택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회사의 전체주주 관점의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준시가 또는 자산가치 중 어느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는지에 따라 지배주주인 SK와 일반주주의 합병회사에 대한 지분율 차이가 8%포인트 이상 발생하는 만큼 이해상충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이번 거래의 이해상충 문제로 SK이노베이션의 일반주주가 받을 수 있는 영향이나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이사회의 노력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고, 이를 고려할 때 회사의 일반주주 권익을 고려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에 또 다른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ESG연구소는 양사 합병에 대해 최근 보고서에서 찬성 의견을 권고한 바 있다.
연구소는 합병 안건에 대해 "주주이익 보호를 위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안정적인 영업현금흐름 창출이 기대되는 SK E&S와의 합병은 재무 안정성 개선, (배터리) 투자 부담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합병 배경과 목적을 점검한 결과 주주가치를 훼손할 만한 사항을 발견할 수 없다"고 찬성 이유를 밝혔다.
◇SK이노베이션 가치 산정 기준이 '관건'
합병 비율과 관련해 반대 주장이 불거지는 이유는 SK이노베이션 가치 산정 방식에 있다. SK이노베이션의 가치가 자산가치(장부가)가 아닌 시장가치로 평가돼 일반주주의 주식가치가 희석돼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정해졌다는 점에 있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가 비상장사와 합병할 경우, 최근 주가 또는 장부상 순자산가치 중 하나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정할 수 있는데, SK는 금액이 낮은 최근 주가를 기준으로 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비율은 1대 1.19로 정해졌다.
한국ESG연구소는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서 합병을 추진하면서 주주가치 제고 방안을 논의한 점이 확인됐다며 "합병을 통한 SK온 정상화와 SK이노베이션의 재무 건전성 확보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SK그룹은 10분기 연속 적자기업인 SK온을 구하기 위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SK E&S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아울러 SK의 통합 SK이노베이션 지분율 확대에 대해서는 "이미 SK가 최대주주로서 양사 경영권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최대주주 및 경영권 변동이 없으므로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앞서 세계 양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미국 ISS와 글래스루이스도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에 대해 재무 구조 안정성 강화 등을 이유로 찬성을 권고했다.
또 미국 주요 연기금인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도 두 회사의 합병에 대해 찬성 의결권 행사 뜻을 공시했다.
◇SK그룹 개편 변수로 떠오른 국민연금의 '주식매수청구권'
이제 공은 국민연금으로 넘어갔다. 반대 의사를 표시한 국민연금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비용이 늘면서 SK그룹 개편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 지분 6.21%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모두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그 규모는 6650억원에 달한다. 매수청구권 예정 가격은 11만1943원, 반기보고서 기준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 주식 6.21%를 가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매수 청구 한도 8000억원을 넘어설 경우 서면으로 합의해 계약을 해제하거나 합병 조건을 변경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까지 반대에 따른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은 다음달 19일까지다.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7일 합병안 승인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연다.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 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 발행주식 총수 3분의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
한편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와 포털 네이버 등에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 사이트를 별도 운영하며 일반주주와의 소통채널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합병으로 예상되는 시너지 효과와 일반주주들의 질의응답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22일 SK이노베이션의 온라인 종목토론실에는 "지들 손해는 1도 없고 개미 희생만 강요한다, 경영진과 오너 일가가 같이 희생 좀 해라!!", "솔직히 합병 찬성해야지 염치가 없다, 하루이자 갚기도 힘든 빚만 해도 55조 이상인 회사아니냐, 상폐시켜도 되는데 살리려고 합병하면 엎드려 절해야제"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