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식량 자급화'의 꿈…국내 라면의 원조 '삼양라면'

2024-07-03     최연성 기자
1963년 최초의 삼양라면 /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의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사 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노동자들을 목격했다. 

먹을 것이 없어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한 끼를 때우는 비참한 모습을 보고 식량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묘안은 바로 '라면'이었다.

전 명예회장은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하면서 일본에서 경영 연수를 받을 때 맛보았던 라면을 떠올렸다. 

◇"'식량자급화' 유일한 해결책"

전 명예회장은 라면의 국내 도입이야말로 식량 자급화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마침내 1963년 9월 15일 국내 최초의 라면을 탄생시켰다.

일본 라면들의 중량은 85g이었지만 삼양라면은 100g으로 출시했다. 가격도 꿀꿀이죽이 5원이었던 것을 감안해 1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한국의 물가를 보면 커피 35원, 영화 55원, 대중적인 담배가 25원 수준이었다. 

어렵게 만들어낸 라면이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오랫동안 쌀 중심의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밀가루로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삼양식품 전 직원과 가족들은 직접 극장이나 공원 등지에서 무료 시식 행사를 열어 라면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삼양라면은 점차 국민들의 입맛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때마침 19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실시한 혼분식 장려 정책을 추진하면서 삼양라면은 10원으로 간편하고 영양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며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삼양라면 초기 광고 / 사진=삼양식품

1963년 처음 출시했을 때의 삼양라면은 '닭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소나 돼지를 사용해 육수를 낼 만큼 원료를 조달하기가 쉽지 않았고 생산 원가 측면도 고려해야 했다.

아울러 일본 묘조식품의 스프 배합으로 만들어진 초기 삼양라면 맛은 지금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같은 동양권일지라도 일본은 후추, 산초 등을 선호했고 한국인은 마늘, 고춧가루 등을 선호하는 모습을 보여 향신료에 대한 기호 차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 명예회장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초기 제품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인 입맛에 맞는 라면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1966년에는 실험실을 열어 한국식 스프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실험실은 연구실로 확장돼 라면의 품질을 높이고 제품을 다양화하는 연구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계속되는 제품 개발과 출시로 1969년부터는 본격적인 제품 다양화 시대로 접어들게 됐고, 19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하게 된다.

1963년 처음으로 라면을 생산한 후 4년째 되는 해부터 판매량은 계속해서 증가했고 1966년 11월 240만봉지, 1969년 월 1500만봉지로 급격한 신장을 보였다. 삼양식품은 초창기 매출액 대비 무려 300배에 달하는 성장을 하게 된다. 

1960년대 매출 신장률 추이를 살펴보면, 해마다 최저 36%에서 최고 254%까지 폭발적인 증가세를 기록할 정도로 라면의 인기는 대단했다.

◇1969년 베트남 첫 수출 '라면의 세계화'

삼양식품은 1969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150만달러 규모의 라면을 수출하며 라면의 세계화를 열어갔다. 이후 60여개국에 라면을 수출해 대한민국 라면의 우수성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2년에는 동남아 지역 수출액이 250만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1972년의 기록을 보면 당시 삼양라면의 매출액은 141억원으로 국내 재계 순위 23위를 차지했다. 당시 소비자가격이 22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약 7억개가 팔린 셈이다. 지금처럼 공장이 자동화 설비를 갖춘 게 아니었기 때문에 7억개라는 숫자는 당시 삼양라면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삼양라면 초기 제품사진(왼쪽부터 1963년, 1964년, 1965년) / 사진=삼양식품

◇소비자 입맛따라…삼양라면 맛의 변천사

삼양식품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제품 리뉴얼을 진행해 왔다. 삼양라면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햄' 맛에 대한 에피소드다. 

2006년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햄 맛을 싫어했던 한 소비자가 삼양식품 홈페이지에 햄 맛을 빼달라고 건의했더니 맛이 변했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게시글은 최근까지도 '삼양라면 파괴자'라는 제목으로 캡쳐돼 인터넷에서 회자되곤 한다. 삼양라면의 맛이 변한 것에 대해 햄 맛이 줄어서 좋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햄 맛을 빼면서 삼양라면 고유의 맛을 잃었다는 사람도 다수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삼양식품 연구소에서는 최상의 맛을 내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진행하며 매년 맛을 개선해 왔다. 

우지파동이 끝나고 1994년부터는 우지가 아닌 팜유를 사용해서 라면을 튀기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맛이 확연히 달라졌다. 

1997년에는 삼양라면에 들어가는 햄 후레이크가 빠졌고 2006년 정부 정책에 따라 나트륨 함량을 줄였다. 직접적으로 햄 향이나 맛을 줄인 것이 아니지만 햄 후레이크가 없어지고 짠맛이 덜해지면서 소비자들은 햄 맛을 뺐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제품의 햄 맛에 대한 논란은 그 후로도 지속되다가 2016년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다시 햄 맛을 강화하고 햄 후레이크를 추가하는 리뉴얼을 진행했다.

사진=삼양식품

◇삼양라면 패키지 변천사

닭고기 육수를 기반으로 생산된 최초의 삼양라면 포장 패키지에 닭 이미지를 사용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포장용대의 경우, 한국의 식품포장기술과 포장용 자재가 미흡한 상태였기에 묘조식품이 사용하는 패키지 120만포를 수입해 사용했다. 첫 생산 이듬해인 1964년부터는 닭 이미지 대신 원 모양의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현재와 같은 패턴의 포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으로 이때의 포장은 현재와 거의 흡사하다. 주황색의 바탕에 빨간 원을 그렸고 삼양라면이라는 로고 타입도 한결 다듬어진 서체를 사용했다. 

그 후 1976년, 78년, 83년 등 여러 번에 걸쳐 바뀌었으나 제조 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로만 바뀌었다. 

1994년 맛을 강화해 재출시하면서 세로 포장이던 것을 가로 형태로 바꾸고 원안에는 조리된 라면 사진을 넣었다.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 로고 타입과 테두리에 금테를 둘러 품질과 가격에 맞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이후 삼양라면의 디자인은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며 조금씩 변화해 왔다. 2013년에는 삼양라면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패키지를 출시했고, 2016년에는 삼양식품 설립 55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패키지를 출시하기도 했다.

삼양식품이 창립 60주년을 맞은 2021년에는 친환경 포장재를 적용한 삼양라면의 새로운 정식 패키지 디자인을 공개했다. 기존의 삼양라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며 오리지널 제품은 주황과 파랑, 매운맛 제품은 빨강과 검정의 강렬한 색상 대비로 주목도를 높였다. 또한 출시부터 표기했던 한자 제품명 '三養'이 아닌 한글 '삼양'으로 표기하며 큰 변화를 줬다.

사진=삼양식품

◇현재의 삼양라면
1963년 출시한 삼양라면은 국내 최초이자 국내에 현존하는 라면 중 가장 오래된 라면이다. 2017년 8월 브랜드 확장에 나서 삼양라면 사상 최초로 '매운맛' 제품을 출시했다. 

삼양라면은 출시 후 고객들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맛을 리뉴얼한 적은 있지만 '삼양라면 매운맛'처럼 맛에 크게 변화를 준 것은 처음이었다.

기존 삼양라면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다른 라면에 비해 순하고 깊은 국물이었기 때문에 삼양라면 매운맛 제품은 '얼큰한 매운맛이 삼양라면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깨지는 않을까' 하는 등 1년 이상의 고민 속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삼양라면 매운맛은 삼양라면을 좋아하는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맵고 얼큰한 국물 라면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2023년에는 삼양라면 출시 60주년을 맞아 삼양라면과 삼양라면 매운맛을 전면 리뉴얼했다. 1년여의 연구개발을 통해 더 깊고 진한 풍미를 완성했다. 

삼양라면은 고유의 햄맛을 유지하면서 육수와 채수의 맛을 강화해 깔끔한 감칠맛을, 삼양라면 매운맛은 소고기 육수를 기반으로 파, 마늘, 고추 등 다양한 향신채를 추가했다. 면은 쫄깃한 식감을 강화하기 위해 감자전분을 추가했으며 기존 원형 면에서 바꿨다.

제품 패키지 디자인도 변경했다. 삼양식품의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CI를 적용했다. 패키지 전면에는 삼양라면 이미지를 배치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임을 강조하고 맛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표현했다.

삼양라면 관계자는 "라면의 원조이자 삼양식품을 대표하는 제품인 만큼, 철저한 품질 관리, 다양한 협업 시도 등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장수브랜드로서의 명성을 꾸준히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