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행동주의 표적된 기업들…'밸류업' 딜레마

삼성물산 이사회안에 77% 찬성…주주환원 '뒷전' 비판 KT&G 대표 선임 '의견차'…국민연금 대한항공에 '제동'

2024-03-18     김현정 기자
​​삼성물산 주주총회/사진=연합뉴스

국내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의 임원 선임이나 주주환원 관련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정부가 증시 부양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을 명분 삼아 공세 수위를 더 높일 태세다. 기업들이 이에 난색을 표하면서 주총 표심을 둘러싸고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삼성물산이 지난 15일 개최한 주주총회에서는 일단 삼성물산이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승기를 잡았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시티오브런던과 미국의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한국의 안다자산운용 등 5개 행동주의 펀드들은 이번 주총에 앞서 삼성물산에 보통주와 우선주에 주당 각각 4500원, 4550원씩 배당하고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요구했다.

반면 삼성물산 이사회는 보통주 1주당 2550원, 우선주 1주당 2600원의 현금배당을 하는 안을 제시했다.

주총 결과는 이사회가 올린 안이 의결권 있는 주식 77%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행동주의 펀드가 제시한 배당 확대안은 23%의 지지를 받는 데 그쳐 부결됐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현상) 해소'라는 정부 정책 방향을 거론하며 주주들의 찬성을 호소했지만, 끝내 주주들의 표심을 얻진 못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제안한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안건도 82%가 반대해 부결됐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삼성물산 지분은 1.46%에 불과해 당초에도 통과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다. 그러나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이들을 지지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송규종 삼성물산 CFO(부사장)는 지난 15일 주총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신규사업 투자를 비롯해 일관성 있고 균형있는 정책 유지에 노력 중"이라며 "기후위기, AI(인공지능) 확산,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 등 대내외 환경을 고려하면 당장 자사주 매입에 현금을 투입하기보다 신규 투자에 중점을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주환원에 대해서는 내년 하반기에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T&G와 대한항공도 주총을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ISS "주주 신뢰회복 위해 독립적 사외이사가 KT&G에 필요"

KT&G는 방경만 KT&G 총괄부문장(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사장 선임안을 밀고 있으나, KT&G 최대주주인 기업은행은 방 수석부사장의 대표이사 선임에 반대표를 내겠다고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ISS는 지난 14일(현지시간) KT&G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오는 28일 열리는 정기주총에서 기업은행이 제시한 손동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외이사 후보에 표를 모으자고 지지를 요청했다. 사실상 방 수석부사장에 대한 반대를 권고한 것이다.

ISS는 KT&G가 방 수석부사장과 함께 추천한 임민규 사외이사, 곽상욱 감사위원 등의 선임 안건에도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 

ISS는 이같은 판단의 근거로 KT&G 경영진에 우호적인 재단이 지분의 10% 이상을 지배하게 된 관행으로 볼 때,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원이 고착화될 우려를 들었다. 회사의 실적 부진과 지속적인 운영 문제, 지배구조 우려 등을 고려하면 판사 및 법률 전문가로서 이력을 쌓아온 손 후보가 적격이라는 판단이다.

앞서 행동주의펀드인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의 이상현 대표도 지난 5일 손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KT&G 사외이사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 이 대표는 당시 "중요한 것은 주주를 위한 CCTV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사외이사가 KT&G 이사회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표 분산을 막고 이번 기회에 주주의 식견을 갖는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반드시 뽑히도록 전력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KT&G는 전면 반박에 나섰다. KT&G는 지난 15일 반박 성명을 통해 "ISS의 분석은 사실과 다른 데이터와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며 "ISS의 사장 후보 선임 안건 반대 권고는 일반적으로 CEO 선임에 대해 반대를 권고하지 않는다는 ISS의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밝혔다. 자사가 공정하고 투명한 선임절차를 통해 사장 후보를 선정했는데도 ISS가 명분 없는 반대 권고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반대"

한편 대한항공도 이사 선임안을 둘러싸고 대주주의 반대에 부딪혔다. 국민연금은 오는 21일 열리는 대한항공 정기주총에서 조원태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사유는 조 회장이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해 감시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식 7.61%(작년 말 기준)를 보유한 2대주주이다.

국내 증시 부양을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따라 이같은 주주 제안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강형구 한양대 교수는 "주주환원은 그룹 지배구조가 관건"이라며 "경영권 시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밸류에이션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주주들이 능력과 윤리 측면에서 경영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밸류업은 이제 시작이고 짧은 시간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기업가치가 오르는 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므로 단기 성과가 나오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